낙화 5

통영

꽃이 피면 지는 게 자연의 원리지만, 다음 해에는 다시 화사한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지만, 오늘의 낙화는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역시 한 송이 꽃,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갈 날을 맞아야 할 것이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기에 천 년을 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통영에서 1박을 한 아침, 숙소 화단에 떨어진 동백이 붉었다. 벚꽃이 거리와 산하를 환하게 덮은, 그렇지만 꽃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은 봄날이었다.

사진속일상 2016.04.07

위미리 동백

2년 전 올레길을 걸을 때 우연히 만났던 위미리 동백이 궁금해 다시 찾아가 보았다.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위미리는 동백과 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제주도의 마을이다. 돌담을 따라 키 높은 동백나무 아래로 뚝 뚝 떨어진 동백이 붉었다. 밭에는 수확하지 못한 귤도 마구 떨어져 있었다. 올해는 감귤 값이 폭락해 아예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많다고 한다. 동백이나 인간의 일이나 속절없음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러나 탄식은 한순간일 뿐, 아랑곳없이 꽃은 핀다.

꽃들의향기 2016.02.03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아롱아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낙화 / 이형기 '이제 35년간의 교직생활을 마감합니다. 스스로 원한 것이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쉽고 허전한 마음 역시 숨길 수 없습니다.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싸웠던 시간들, 보람도 있었지만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도 많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좋았던 일보다는 후회되고 자책되는 일들이 더 많이 떠오..

시읽는기쁨 2011.02.11

낙화

뒷뜰의 명자나무에 핀 꽃이 땅에 소복이 떨어졌다. 그 모습이 참 편안하고 아름답다. 자연스러움은 늘 이렇게 사람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낙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야할 때를 알고 뒤돌아서는 그대의 모습은 아름답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나폴거리며 떨어지는 그대에게서 아름다움의 향기가 피어난다. 가볍게 비어진 상태에서만 참된 낙하를 경험할 수 있다. 생기고 떠나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친구여,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 나 곧 그대 뒤따라 갈거니 우리 다시 흙으로 만나 새 꿈을 꾸어보자꾸나.

사진속일상 2007.04.26

낙화

오가는 출퇴근길의 중간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며 옛날 권력자들의 안가로 사용되었던 집들을 헐고 공원을 조성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자그마한 공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몇 종류의 꽃들도 자라고 있다. 흠이라면 너무 인공적이고 깔끔한 것인데, 그래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과거에는 여기가 서슬 퍼렀던 높은 분들의 회식과 밀담 장소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때 같았으면 감히 옆을 지나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공원 한 귀퉁이에 모란이 피었다가 얼마 전에 보니까 꽃잎이 모두 떨어졌다. 싱싱한 꽃잎이 시들지 않은 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 동백만큼 비장하지는 못해도 왠지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사진속일상 200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