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10

눈 내린 남산

간밤에는 요란하게 천둥이 치면서 눈구름이 지나갔다. 아침에는 하얀 세상이더니 낮이 되면서 눈이 녹고 물기 촉촉한 땅이 되었다. 우수가 지나니 봄이 더욱 가까워졌다. 남산에서 경떠회원 일곱 명이 모였다. 오전에 남산 둘레길을 걸었는데, 나는 중간에 목멱산방에서 합류했다. 이번에 회원 중 셋이 한꺼번에 명퇴를 했다. 각자의 개성이 더욱 드러나는 때가 퇴직 이후다. 서로 다른 가운데 함께 뜻을 나누는 모임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목멱산방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하고, 충무로역 부근 카페에 잠시 앉았다가 헤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누군가의 강권이 있어 소주 한 잔은 나누었을 것이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사진속일상 2018.02.24

남산 튤립

봄 남산에 가니 길과 성벽을 따라 튤립을 많이 심어 놓았다. 꽃 구경에 정상 오르는 막바지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꽃을 보면 누구나 얼굴이 환해진다. 작은 짜증은 쉽게 풀어진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서 꽃이 주는 효과다. 우리 땅에 우리 꽃은 어떨까, 생각해 보지만 튤립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은은한 아름다움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꽃들의향기 2016.04.23

삼삼회에서 남산 걷다

삼삼회에서 신록의 남산길을 걷다. 회장이 바뀐 뒤 모임 스타일이 달라졌다. 저녁에 만나 식사하는 대신, 오전에 만나 가벼운 걷기를 하고 점심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변했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지난 모임에서는 인왕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남산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모였다. 새로 나온 한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1년 만에 만났다. 시골 초등학교라 남학생 반은 하나밖에 없어 6년을 같이 보냈는데도 얼굴이나 이름이 낯설었다. 그래도 공통의 추억에 웃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길 주변에는 꽃이 많아 이리저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행에 자꾸 뒤처져도 좋았다. 성곽길을 따라 팔각정에 올랐다. 팔각정에서 남산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중심부. 하필 올들어 제일 심한 황사가 찾아..

사진속일상 2016.04.23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가벼운 산책

볼 일이 있어 서울에 나간 길에 시간 여유가 생겨 남산 언저리에 들었다. 순환도로 산책로를 짧게 걸었다. 늦단풍이 아직도 선연했다. 일부는 여전히 초록색인 걸 보니 청단풍인 것 같다. 단풍 구경 하러 멀리 갈 필요 없이 내년에는 이곳으로 와야겠다. 동국대학교 캠퍼스에도 들어가 보았다. 대학 졸업하고 이곳에서 학생으로 잠시 적을 두었으니 인연이 있다. 군대에 가기 싫어 행정대학원을 1년 간 다녔다. 37년 전인 1975년의 일이었다. 캠퍼스 안에 무슨 나무가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중앙광장에서 볼썽사나운 은행나무를 보았다. 꼭 이렇게 가지치기를 해야 했을까? 장충단공원에서는 수표교(水標橋)가 낯익었다. 오래된 조선 시대의 다리다. 원래는 청계천에 있었는데 복개 공사를 하면서 1959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투박..

사진속일상 2012.11.16

남산 소나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남산하면 소나무가 연상되는 것은 이런 애국가의 가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남산에는 철갑을 두른 듯한 울창한 소나무 숲은 없다. 그래도 남쪽 기슭을 중심으로 일부가 남아있는데, 남산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은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때 남벌한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남산의 소나무 숲 자체가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때에 장정 수천 명을 동원해 남산을 중심으로 20일 동안 100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궁궐 건축 등을 위한 목재 수요의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소나무의 벌채를 금하면서 남산은 숲이 울창해져 산적이 출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소나무가 지금은 전체의 20..

천년의나무 2009.10.07

UP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시내 나들이를 했다. 먼저 대한극장에서 영화 '업'(UP)을 보았다.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그림이나 내용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모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할아버지 '칼'에게 극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수천 개의 풍선으로 집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드디어 미지의 땅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되고, 소년 '러셀'과 함께웃고 울리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모험이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의 꿈을 쫓아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지만 결국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읽고본느낌 2009.08.21

봄의 남산길을 산책하다

봄의 절정이 지나고 있다. 봄이 찾아온지 엊그제 같은데 인생의 황혼처럼 봄은 서둘러 떠나가고 있다. 서울 지역의 벚꽃 축제도 이번 주말이 마지막이다. 봄은 어느 순간에 찾아왔다가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다. 가슴에 뜨거운 연정만 불질러 놓고 약 올리며 봄은 떠나간다. 봄꽃에 걸신이 들린 듯 오늘은 남산으로 나갔다. 찬란한 꽃잔치에 취하면 쓰디쓴 세상사는 잠시 잊는다. 그것이 짧은 순간의 마취제에 불과한 걸 잘 알지만 봄의 마력 앞에서는 누구나 마술에 걸릴 수밖에 없다. 마술이 풀리면 더 외롭고 쓸쓸해질 지라도 누구나 그 마법에 걸리고 싶어한다. 봄은 위대한 마술사다. 남산길에 차량 통행이 금지된 후 북쪽 순환로 일부만 걸어보았지만 전 구간을 걸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후암동 ..

사진속일상 2008.04.13

남산길을 산책하다

어제 오후에는 남산길을 산책했다. 1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내려 한옥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산책로에 들어갈 수 있다. 어제는 날씨는 청명했지만 바람이 차고 세게 불었다. 늦가을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은 때이지만 날씨 탓인지 산책하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었다. 올해 단풍은 어디에서나 선명하지 못하다. 남산 단풍도 마찬가지였다. 산책길에는 낙엽이 이러 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다. 북쪽 산책길은 그늘이 져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한참을 걸어가면 산 위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타난다. 옛날부터 이 길은 남산으로 오르는 주통로였다. 벌써 40년 가까이 되었다. 처음 서울에 와서 남산 구경을 따라 나섰던 길도 이 길이었다. 그때는 계단이 아닌 흙길이었고, 벚꽃 만발한 길가에는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파..

사진속일상 2006.11.15

차 없는 남산순환로

마침 남산 아래서 열린 친지의 결혼식에 참석한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남산 순환로 길을 걸어보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시작된 북쪽 순환로인데 이 길은 10여 년 전에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보행로로 시민들에게 개방된 길이다. 금년 봄에 다시 남쪽 순환로까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이제 남산 둘레를 따라 온전한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무척 반가운 일이다. 사실 서울 시민이 일부러 남산을 찾기는 드물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차량이 아니면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남산 식물원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지만 다른 길은 보도가 없는 차도 뿐이라 매연을 마시며 차를 피해 위험하게 걷기는 어려웠다. 옛날에 잠깐 걸어보며 이 좋은 길을 보행자 전용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실현이 된 것이다. ..

사진속일상 200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