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생 9

장자[122]

그대는 유독 진인들의 자연스런 행실을 듣지 못했는가? 그들은 간과 쓸개를 잊어버리고 귀와 눈도 잊은 듯이 망연히 속세의 밖을 거닐고 인위가 없는 자연에 노닌다. 이를 일러 다스리지만 드러내지 않고 기르지만 주재하기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그대는 지식을 꾸며 어리석음을 위압하고 몸을 닦아 더러움을 까발리며 해와 달을 걸어놓은 듯 자기를 드러내며 행동하고 있다. 그대 같은 사람이 몸을 온전히 유지하고 아홉 구멍을 갖추고 있으며 길에서 귀머거리와 장님과 절름발이에게 해코지를 입지 않고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팔자를 얻었으니 역시 요행이다. 그런데도 어찌 하늘을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어서 돌아가라! 子獨不聞 夫至人之自行邪 忘其肝膽 遺其耳目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无事之業 是謂爲之不恃 長而不宰 今汝..

삶의나침반 2010.06.02

장자[121]

공수반이 손으로 선을 그리면 그림쇠와 곱자에 맞았다. 그것은 손가락이 자연의 조화와 함께할 뿐 마음으로 계교하지 않았으므로 정신의 집이 전일하여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은 잊은 것은 신발이 적의(適宜)한 때문이며 허리를 잊은 것은 허리띠가 적의하기 때문이며 지혜가 시비를 잊은 것은 마음이 적의하기 때문이며 내심이 변하지 않고 외물을 추종하지 않은 것은 사물을 대함이 적의하기 때문이다. 비롯됨이 마땅하면 마땅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조차 잊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工수旋而蓋規矩 指與物化 而不以心稽 故其靈臺一而不桎 忘足 구之適也 忘腰 帶之適也 知忘是非 心之適也 不內變 不外從 事會之適也 始乎適 而未嘗不適者 忘適之適也 - 達生 8 신발이 발에 잘 맞으면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린다. 허리..

삶의나침반 2010.05.30

장자[120]

신은 목공일 뿐입니다. 무슨 도술이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있다면 신이 그것을 만들 때는 기(氣)를 소모시키는 일이 없습니다. 반드시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히 하는데 재계 삼 일이면 모든 칭찬과 작록의 마음을 품지 않게 됩니다. 재계 오 일이면 비난 칭찬 잘되고 못되는 것에 마음 쓰지 않게 됩니다. 재계 칠 일이면 문득 제가 사지와 형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잊습니다. 이런 때는 공실도 잊고 기술이 전일하고 외부의 어지러움이 소멸됩니다. 그런 경지가 된 연후 산림에 들어가면 나무의 천성과 재질의 지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연후 편종 걸이의 완성된 모습이 눈에 나타납니다. 그런 연후에 손을 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둡니다. 그런즉 나무의 천성과 저의 천성이 합해집니다. 작품이 신기로 의심되는 ..

삶의나침반 2010.05.23

장자[119]

공자가 여량을 관람했는데 폭포는 삼천 길이요, 소용돌이는 사십 리나 되는 급류였다. 물고기는 물론 자라나 악어도 수영할 수 없는 곳이었다. 공자는 한 장부가 거기서 수영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 자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에게 물결을 따라가서 그를 건져주라고 했다. 수백 보를 따라가 보니 그는 물에서 나와 머리를 털고 노래를 부르며 둑 아래서 쉬고 있었다. 공자가 다가가 물었다. "나는 당신을 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이군요. 한마디 묻겠는데 수영에도 도(道)가 있겠지요?" 수부(水夫)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나에게는 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근본[故]에서 시작해서 천성[性]을 기르고 천명[命]을 이룰 뿐입니다. 나는 소용돌이와 더불어 물속에 들어가고 솟구치는 물과 함께 나오며 '..

삶의나침반 2010.05.16

장자[118]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길렀다. 열흘이 지나자 왕이 물었다. "닭은 다 준비되었나?"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지금은 교만하여 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또 왕이 물었다.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울음소리와 그림자만 보면 달려듭니다." 열흘이 지나자 또 왕이 물었다. 기성자가 답했다. "아직 아닙니다. 질시하고 기운이 왕성합니다." 열흘이 지나자 또다시 왕이 물었다. 기성자가 답했다. "거의 된 것 같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아무 변화가 없고, 나무로 만든 닭처럼 보입니다. 덕이 온전해졌습니다. 다른 닭들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도리어 도망쳐 버립니다." 紀성子爲 王養鬪鷄 十日而問 鷄已乎 曰 未也 方虛驕而恃氣 十日又問 曰 未也 猶應嚮景 十日又問 曰 未也 猶疾視而盛..

삶의나침반 2010.05.10

장자[117]

활쏘기에서 기왓장이 상품으로 걸리면 기술을 다할 수 있지만 은고리가 상품으로 걸리면 떨리고 황금이 걸리면 혼미해진다. 기술은 동일하지만 아끼는 마음이 있어 외물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무릇 외면이 중시되면 내면은 궁색해지는 것이다.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혼 其巧一也 而有所矜 則重外也 凡外重者內拙 - 達生 4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기본 오락인 고스톱을 치지 못한다. 하는 방법이야 알지만 워낙 서툴러 자리에 낄 수가 없다. 고스톱 뿐만 아니라 돈이 걸리는 모든 내기에 약한 편이다. 그 이유는 워낙 좀생이다보니 돈을 잃게 되면 마음이 흔들려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짜가 되려면 흔들림 없는 강심장이 있어야 한다. 운동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큰 승부에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면 어..

삶의나침반 2010.05.06

장자[116]

공자가 초나라로 가다가 숲 속을 나오는데 곱사등이가 매미를 줍듯이 잡는 것을 보았다. 공자가 말했다. "당신은 기술이 좋구려! 무슨 도가 있소?" 곱사등이가 말했다. "저야 도가 있습지요. 반 년 정도 구슬 두 개를 간대 끝에 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놓치는 일이 적은 편이지요. 세 개를 쌓고 떨어뜨리지 않으면 놓치는 것이 열에 하나지요. 다섯 개를 쌓고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줍듯이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그루터기같이 하고, 팔을 잡는 것은 마른 나뭇가지같이 합니다. 비록 천지는 크고 만물은 많지만 오직 매미의 날개만 생각할 뿐 뒤돌아보거나 옆을 보지도 않으니 만물을 매미의 날개로 바꾸어버리지 않는 한 어찌 잡지 못 할 리 있겠습니까?" 仲尼適楚 出於林中 見구루者承조猶철之也 仲尼曰 ..

삶의나침반 2010.04.30

장자[115]

술 취한 자는 수레에서 떨어져도 비록 아프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골절은 남과 같지만 해를 입는 것은 남과 다르다. 그 정신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레를 탄 것도 추락한 것도 지각하지 못한다. 삶과 죽음은 놀랍고 두려운 것이지만 그의 가슴 속에 침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물과 뒤섞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술 취해도 온전하기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천성을 온전히 할 때야 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성인은 천성을 간직하고 있으니 상할 수 없는 것이다. 夫醉者之墜車 雖疾不死 骨節與人同 而犯害與人異 其神全也 乘亦不知也 墜亦不知也 死生驚懼 不入乎其胸中 是故오物而不습 彼得全於酒 而猶若是 而況得全 於天乎 聖人藏於天 故莫之能傷也 - 達生 2 대형사고가 났을 때 어린아이가 어른들보다 살아남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

삶의나침반 2010.04.23

장자[114]

생명의 진실을 통달한 자는 생명이 할 수 없는 것에 힘쓰지 않는다. 운명을 통달한 자는 지혜가 어쩔 수 없는 것에 힘쓰지 않는다. 達生之精者 不務生之所無以爲 達命之精者 不務知之所無奈何 - 達生 1 이 편의 이름인 달생(達生)은 생에 통달한다는 뜻이다. 또한 삶의 달인이라는 의미도 된다. 이 달생편에서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보전하면서 어떻게 삶의 달인이 될 수 있는지를 재미있는 예화를 통해 설명한다.이 구절은 달생편 맨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가 말하는 삶의 달인은 세상의 부귀영화나 존경을 얻는 기술을 가리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달생은 무기(無己)에서 나온다. 즉 자아의 욕망을 이루려 함이 아니라 자아를 포기하는 데서 얻어지는 경지다.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

삶의나침반 201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