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22]

샌. 2010. 6. 2. 08:07

그대는 유독 진인들의 자연스런 행실을 듣지 못했는가?

그들은 간과 쓸개를 잊어버리고 귀와 눈도 잊은 듯이

망연히 속세의 밖을 거닐고

인위가 없는 자연에 노닌다.

이를 일러 다스리지만 드러내지 않고

기르지만 주재하기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그대는 지식을 꾸며 어리석음을 위압하고

몸을 닦아 더러움을 까발리며

해와 달을 걸어놓은 듯 자기를 드러내며 행동하고 있다.

그대 같은 사람이 몸을 온전히 유지하고

아홉 구멍을 갖추고 있으며

길에서 귀머거리와 장님과 절름발이에게 해코지를 입지 않고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팔자를 얻었으니 역시 요행이다.

그런데도 어찌 하늘을 원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대는 어서 돌아가라!

 

子獨不聞 夫至人之自行邪

忘其肝膽 遺其耳目

芒然彷徨乎塵垢之外

逍遙乎无事之業

是謂爲之不恃

長而不宰

今汝飾知而驚愚

修身以明汗

昭昭乎若揭日月 而行也

汝得全而形體

具而九窺

無中道夭於聾盲跛蹇

而比於人數亦幸矣

又何暇乎天之怨哉

子往矣

 

- 達生 9

 

손휴(孫休)가 편경자(扁慶子) 선생을 찾아와 한탄했다. 자신은 고향에 살면서 수양이 덜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간난을 당하여 용기가 없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농사에 힘썼으나 풍년을 만나지 못했고, 도리어 마을에서 배척당하고쫓겨났으니 도대체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느냐고. 윗글은 이런 손휴의 불만에 대한 편자 선생의 대답이다.

 

손휴의 심정을 절절히 체험한 때가 과거에 있었다. 그때는 나도 세상과 하느님을 원망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이 야속했다. 내가 가는 길은 진리의 길이었고 의의 길이었다고 믿었다.겉으로는 가시밭길이라 생각했지만 내심으로는 세상과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영해줄 줄 알았다. 또다른 형태의 명예욕이었다. 돌아보면 너무나 이기적이었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다. 거기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떠나고 나서야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편자 선생은 너무 야박할 정도로 손휴를 나무란다. 마치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욕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위선자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솔직히 나도 뜨끔해진다. 이 정도로 몸을 유지하고, 길에서 모욕을 당하지 않고,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음을 행운이라 여기고 감사해야 될 처지인데 도리어 하늘을 원망하다니 말이다. 이런 건 과거 뿐만 아니라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사실이다. 많이 되돌아보고 되돌아봐야겠다.

 

간과 쓸개을 잊어버리고 귀와 눈을 잊은 듯이 속세의 밖을 거닐고, 인위가 없는 자연에서 노닌다. 이를 '진인들의 자연스런 행실'[眞人之自行]이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으로나 개인으로나 자기중심성을 탈피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직면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나'를 내세우다 보면 불협화음은 피할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행동해도 천명에서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씀이 새삼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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