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19]

샌. 2010. 5. 16. 07:53

공자가 여량을 관람했는데

폭포는 삼천 길이요, 소용돌이는 사십 리나 되는 급류였다.

물고기는 물론 자라나 악어도 수영할 수 없는 곳이었다.

공자는 한 장부가 거기서 수영하는 것을 보고

괴로워 자살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에게 물결을 따라가서 그를 건져주라고 했다.

수백 보를 따라가 보니

그는 물에서 나와 머리를 털고 노래를 부르며

둑 아래서 쉬고 있었다.

공자가 다가가 물었다.

"나는 당신을 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이군요.

한마디 묻겠는데 수영에도 도(道)가 있겠지요?"

수부(水夫)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나에게는 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근본[故]에서 시작해서

천성[性]을 기르고 천명[命]을 이룰 뿐입니다.

나는 소용돌이와 더불어 물속에 들어가고

솟구치는 물과 함께 나오며

'물의 도'에 따를 뿐

결코 '나의 도'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수영 방법입니다."

 

孔子觀於呂梁

縣水三千刃 流沫四十里

원타魚별之所不能游也

見一丈夫游之

以爲有苦而欲死也

使弟子竝流而拯之

數百步而出

被髮行歌

而遊於塘下

孔子從而問焉

曰 吾以子爲鬼 察子則人也

請問 蹈水有道乎

曰 亡

吾無道

吾始乎故

長乎性 成乎命

與齊俱入

與골偕出

從水之道

而不爲私焉

此吾所以蹈之也

 

- 達生 6

 

물에 뻐졌을 때 살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더 헤어나기 힘들다. 빠져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몸을 무겁게 하고 도리어 수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극한의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기에 나오는 수영의 달인은 물고기조차 살기 어려운 조건에서도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소용돌이와 더불어 물속에 들어가고 솟구치는 물과 함께 나오며 오로지 '물의 도'에 따를 뿐입니다."

 

또한 '나의 도'가 없다는 것은 나를 비우고 물과 하나된 상태를 말한다. 그에게는 물과 나의 구분이 없다. 집착이나 분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오직 천성[性]이나 천명[命]에 몸을 맡길 뿐이다. 이런 사람을 장자는 지인(至人), 생의 달인이라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거대하고 험한 폭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도 하다. 세상과 맞서다가 온전히 생을 보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노자가 세 가지 보배 중 하나로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을 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장자의 가르침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식의 처세훈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굴종이나 예속일 뿐이다. 그걸 넘어서는데 인생의 의미가 있다.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운명을 넘어서는 자유의 삶이 되어야 한다. 바람이 불면 풀이 눕지만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선다.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풀과 같은 생에의 의지, 진정한 생명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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