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3

달팽이의 귀환

작년 가을에 고향에서 올라올 때 어머니가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싸주셨다. 그 더미 속에 묻혀 달팽이 한 마리가 따라온 걸 집에 와서야 발견했다. 줄을 잘못 섰다가 졸지에 정든 땅과 생이별한 신세가 된 것이다. 다시 돌려보낼 길은 없고 집에서 한 번 길러보자 하고 화분에 배춧잎을 깔아 새 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런데 웬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달팽이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온 베란다를 뒤졌지만 도저히 찾지 못했다. 새 환경이 낯설었는지 어디로 숨어버린 것 같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수색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달팽이는 잊혀졌다. 사라졌던 달팽이가 오늘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분에 붙어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여섯 달 만이었다.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돌아온 탕..

사진속일상 2013.04.21

장자[178]

대진인이 물었다. “달팽이란 놈이 있는데 군주께서도 아시지요?” 혜왕이 답했다. “알지요.” “달팽이의 왼쪽 뿔에 나라가 있는데 촉씨라 하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라 부릅니다. 이들은 서로 땅을 다투며 수시로 전쟁을 하는데 전사자가 수만 명이라 합니다. 패배자를 쫓을 때는 십오 일 이후에나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혜왕이 말했다. “오! 그것은 거짓말이겠지요!” 대진인이 말했다. “신은 군주를 위해서 사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군주께서는 사방 상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왕이 말했다. “끝이 없지요.” 대진인이 말했다. “마음이란 무궁에 노닌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눈으로 걸어 도달할 수 있는 나라를 돌이켜보십시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 같기도 할 것입니다.” 혜왕이 말했다. “글쎄요?..

삶의나침반 2011.08.30

민달팽이 /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띈,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納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

시읽는기쁨 200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