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4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덕수궁 회화나무

고궁에서는 어디서나 오래된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그것은 회화나무가 선비나 학자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옛날 주나라 봉건시대 때는 신분에 따라 무덤 주위에 심는 나무 종류도 달랐다. 천자는 소나무, 제후는 측백나무, 선비의 경우에는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학자수 또는 선비나무로 불리었는데, 당연히우리나라에도 그렇게 전해져서 회화나무는 선비나 학식을 상징하는 나무로 되었다. 덕수궁에도 여러 그루의 회화나무 고목이 있다. 대략 300여 년이 된 나무들이다. 특히 이 회화나무에는 줄기에 큰 옹두리가 달려 있다. 옹두리는 나무 줄기가 상한 자리에 결이 맺혀 혹처럼 불퉁해진 것을 가리키는데 회화나무에 잘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중국에서는 괴(槐)라고 부른다. 중..

천년의나무 2008.04.22

오색 물든 덕수궁

이른 퇴근길에 교보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나무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스스로를 '나무에 미친 환자'라고 부르는, 한문을 전공하신 분이 쓴 나무책이었다. 그리고 가을 향기에 끌려 덕수궁에 들렀다. 마침 덕수궁에서는 '시와 그림이 있는 오색 물든 덕수궁'이라는 주제로 낙엽길에서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을을 곁에 두고 홀로 가슴엔 낙엽더미가 쌓였다, 스스로 타버리는 재가 되어 저기 저 벌판에 서있는 외줄기 처연한 사랑이 있습니까? 펼친 시간 허락하시고 비로소 사랑받게 하소서 겨울 오기 전 낙엽 지듯 사랑 또한 진다해도 한 계절 앓느니 한 계절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엔 만나게 하소서 할퀴고 저버려진 가지에는 청록의 싹 움틀 리 없고 미래도 생명도 잃어 가리니 선선히 받아드린 사랑 무너질 때로 무너지더라..

사진속일상 2007.11.14

덕수궁을 산책하다

비 없는 가을이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 벽을 덮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제대로 붉은 단풍을 뽐내지도 못하고 말라죽어가고 있다. 대기도 건조해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모래 먼지가 운동장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런데 어제는 모처럼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 나타났다. 창 밖 풍경이 문득 야외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들길을 걷고 싶었다. 조금 일찍 자리를 떠서 덕수궁을 찾았다. 문 하나만 들어서면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을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한가로이 경내를 거닐고 있었다. 사람들 표정에서는 가는 계절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으면서도 뭔가 원숙하고 내성적인 분위기가 고궁과 잘 어울렸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느릿느릿 산책을 하기도 했다. ..

사진속일상 2006.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