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9

그냥

들판에서 자라나는 풀꽃을 생각한다. 만약 풀꽃이 말을 한다면 왜 사느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풀꽃은 사는 게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고개를 갸웃하며 살포시 웃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말이 참 좋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좋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면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슨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 사는 게 아니다. "그냥" 산다. "그냥" 산다고 자신에게 가만히 속삭여 보라.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홀연히 가벼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기쁜 일이 찾아오면 웃고, 슬픈 일이 찾아오면 울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뿐이다. 지금 좋게 보인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지금 나쁘게 보인다고 나쁜 일은 ..

참살이의꿈 2023.10.06

다읽(2) - 생활의 발견

젊은 시절에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애쓰던 시기라 주로 철학책이 많았다. 둘은 많은 부분에서 생각을 공유했지만 조금 결이 다르기도 했다. 누가 추천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와 함께 읽으며 토론했던 책 중 하나가 이 이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이 썼는데 동양인의 정서에 잘 맞았다. 특히 친구는 임어당이 강조하는 동양의 멋과 여유에 홀딱 빠졌다. 반면에 나는 임어당의 노회하고 현실주의적 사고에 거리감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생각 차이가 지금 우리 둘의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임어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즐거움의 추구에 둔다. 인생에서 관념적인 목적이나 목표를 구하는 것은 헛되며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그분의 명쾌한 말이 있다. "만일 인생에..

읽고본느낌 2020.08.15

각비(覺非)

각비(覺非)란 직역하면 '그릇됨을 깨닫다'는 뜻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온다. 각비(覺非)는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覺今是而昨非]'에서 첫 자와 마지막 자를 딴 것이다.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 旣自以心爲形役 奚추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塗基未遠 覺今是而昨非.... 돌아가야지 논밭이 묵어 가는데 내 어찌 아니 돌아갈 수 있으랴 이제껏 마음은 몸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는가 지난날은 뉘우쳐봐야 바뀔 게 없고 이제 앞으로나 그르치는 일 없으리 길은 어긋났지만 그리 멀어진 것은 아니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깨달았노라.... 도연명은 호구지책으로 나이 마흔에 지방의 말단 관직을 하나 얻었다. 그러나 관리 노릇은 천성에 맞지..

참살이의꿈 2012.11.29

장자[147]

도는 귀로 들을 수 없다. 들었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보았다면 도가 아니다. 도는 입으로 말할 수 없다. 말했다면 도가 아니다. 형체를 지각할 수는 있지만 그 형상(形狀)은 형상(形相)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를 이름 붙이는 것은 합당치 않다. 道不可聞 聞而非也 道不可見 見而非也 道不可言 言而非也 知形 形之不形乎 道不當名 - 知北遊 10 도덕경의 '道可道非常道'를 떠올리게 한다. 도는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입으로 말할 수도, 마음으로 알 수도 없다. 인간의 감각이나 인지작용을 초월해 있다. 도를 말하는 순간 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도는 물을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가 도를 물었을 때 무언가 대답한다면 그는 도를 모르는 자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삶의나침반 2010.12.12

雜詩(二) / 陶淵明

白日淪西阿 素月出東嶺 遙遙萬理輝 蕩蕩空中景 風來入房戶 夜中枕席冷 氣變悟時易 不眠知夕永 欲言無予和 揮杯勸孤影 日月擲人去 有志不獲騁 念此懷悲悽 終曉不能靜 - 雜詩(二) / 陶淵明 밝은 해 서쪽 장강으로 떨어지고 하얀 달 동편 산봉우리로 나오네 달빛은 아득히 만리를 비추며 넓디넓게 공중에서 빛나네 바람은 방문으로 들어오고 밤중에 잠자리 서늘도 하여라 기후 변해 시절의 바뀜 깨닫고 잠 못 이뤄 밤 길어졌음을 안다네 말 나누려 하나 나와 화답할 이 없어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게 권하네 세월은 사람을 버려두고 가니 뜻이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오 이를 생각하다 마음은 구슬퍼 새벽 되도록 진정하지 못한다오 잡시(雜詩) 12수(首)는 도연명이 50세 즈음에 지은 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낙향한지 10년, 그를..

시읽는기쁨 2004.12.16

自祭文 / 陶淵明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 유럽의 17세기에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대립되는 관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기라)이고, 다른 하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였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이런 삶의 양면성 문제는 존재해 왔을 것이고, 어느 관점이 우세하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특징이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관점을 택함에 따라 현실 중심적으로 되든지아니면 이상주의로 기울거나 종교적성향이 강해지기도 한다. 카르페 디엠은 삶을 긍정하지만 경박해지기 쉽고, 메멘토 모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좋으나 무겁고 음울해지기 쉽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오히려 메멘토 모리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

시읽는기쁨 2004.01.27

국화 전시회

코엑스 앞에서 열리고 있는 국화 전시회장을 찾다. 국화의 종류나 색깔은 상상 외로 다양하고 많았다. 보통은 노란 색의 많은 잎이 중앙으로 뭉쳐진 모양이 연상되는데 그러나 크기나 모양이 각양각색이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이는 파란 색 국화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국화에 대한 고정된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초보자를 위해서 품종 이름과 특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다. 바른 명칭은 아니지만 통상 들국화라고 부르는 우리 야생화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구절초얼마가 한 쪽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1500여년 전 도연명의 손에 들려 있었을 국화는 어떤 것이었을까? 괜히 쓸데없는 게 궁금해 진다.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남산을 바라보네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

사진속일상 2003.10.11

飮酒16 / 陶淵明

少年罕人事 어려서부터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遊好在六經 육경을 읽으며 친구를 삼았더니 行行向不惑 세월 흘러 나이 사십 바라보니 淹留遂無成 내가 이룬 일이 없구나 竟抱固窮節 비굴하지 않은 굳은 절개만을 품은 채 飢寒飽所更 추위와 굶주림만 지겹도록 겪었구나 弊廬交悲風 초라한 오두막엔 차가운 바람만 드나들고 荒草沒前庭 잡초는 집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었구나 披褐守長夜 낡은 옷 걸치고 지새우는 긴긴 밤 晨鷄不肯鳴 닭마저 새벽을 알리지 않는다 孟公不在玆 선비를 알아주는 맹공도 없으니 終以예吾情 끝내 내 가슴이 답답하구나 도연명 스스로가 선택한 가난과 빈한이었지만 그의 전원 생활은 고달픈 나날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낭만적 가난이 가능할까? `安貧`도 역시 가능할까? 먹을 양식도 떨어지고, 입을 옷조차 헤어져 찬 바..

시읽는기쁨 2003.09.28

도연명의 귀거래사

도연명(陶淵明)..... 도연명의 시를 처음만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한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저 멋있다고만 느낀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이라는 구절과, 대표작이 `歸去來辭`인 전원시인이라는 정도로 소개받은 기억이 난다. 그 후 한참 지나서그분의삶과 시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단순히 전원시인이라고 이름붙일 수 없는 그분의 깊은 내면세계에이끌리게 되었다. 나이 41세(405년).... 팽택현령(彭澤縣令)을 사직하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소통(蕭統)의 `陶淵明傳`에는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 해가 끝날 무렵 마침 군(郡)에서 파견한 독우(督郵)가 현(縣)에 도착하니 아전이 청하길, "꼭 허리띠를 하시고 뵙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연명은 탄식하며 "내가 어찌 다섯 말의 미곡 때문..

참살이의꿈 2003.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