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2) - 생활의 발견

샌. 2020. 8. 15. 15:03

젊은 시절에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애쓰던 시기라 주로 철학책이 많았다. 둘은 많은 부분에서 생각을 공유했지만 조금 결이 다르기도 했다. 누가 추천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와 함께 읽으며 토론했던 책 중 하나가 이 <생활의 발견>이다. 중국의 임어당(林語堂)이 썼는데 동양인의 정서에 잘 맞았다. 특히 친구는 임어당이 강조하는 동양의 멋과 여유에 홀딱 빠졌다. 반면에 나는 임어당노회하고 현실주의적 사고에 거리감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생각 차이가 지금 우리 둘의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임어당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즐거움의 추구에 둔다. 인생에서 관념적인 목적이나 목표를 구하는 것은 헛되며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그분의 명쾌한 말이 있다. "만일 인생에 목적이나 설계가 있다면, 그것을 발견하는데 그렇게도 까다롭고 막연하고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을 즐긴다는 것 이외에 인생에 다른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어당의 행복론은 육체적 감각을 바탕에 둔다. 아예 한 장의 제목이 '행복은 관능적이다'로 되어 있다. 본능을 인정하고 충실하는 게 우선이다. 서구 기독교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억제하면서 지나치게 정신적이고 영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기독교는 육과 영을 구별하고 우열을 두면서 인간의 행복 추구권을 앗아갔다. 물질적 즐거움과 정신적 즐거움 구분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육체의 오감을 통해서 정신의 만족을 누린다.

임어당의 사상은 구체적인 삶에서 나오는 생활 철학이다. 관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본인은 '서정철학(抒情哲學)'이라고 하는데, 이는 동양의 예술가나 은자들의 멋이 가미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생활의 즐거움'이라는 장에 보면, 와상론, 청담론, 다론, 교우론, 연초론, 향론, 주론, 음식론 등 전부가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임어당은 인생을 즐긴 인물로 장자, 노자, 맹자, 자사자, 도연명을 든다. 그중에서도 인생을 사랑하며 조화롭게 산 대표적 인물로 도연명을 예찬한다. 유(儒), 불(佛), 선(仙)이 도연명의 내면에서 조화롭게 통합되었다는 것은 '호계삼소(虎溪三笑)'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유일한 결점이라면 술을 좋아한 것이었다는데, 임어당이 보기에는 이마저도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상적인 철학자란 여성이 지닌 아름다움은 이해하나 아례(雅禮)을 잃지 않으며, 인생을 깊이 사랑하기는 하나 스스로 절도를 잃지 않으며, 속세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다같이 허망함을 깨달아, 세상일에 초연하여 달관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속세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도연명은 정신면에서 성숙해진 결과 이와 같은 참된 조화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그에게는 내적인 정신면에서의 상극과 같은 것은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의 생애는 그가 남긴 시와 같이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이었다. 도연명은 아무것에도 걸리는 게 없고 근심 없는 한 빈농시인(貧農詩人)으로, 현명하고 명랑한 늙은이로서 세상을 떠났다."

<생활의 발견>을 다시 읽어보니 내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보인다. 행복한 현실주의자냐, 불만 많은 이상주의자냐, 나는 아무래도 후자다. 임어당 선생은 먹고 자고 싸는 네 삶의 현장에서 즐거움을 찾으라고 말한다. 옳으신 말씀으로 경청해야겠다.

가지고 있는 책은 1983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것인데 활자가 작고 세로로 되어 있어, 다시 읽는데 너무 애를 먹었다. 나이가 드니 눈이 아파서 책을 못 보겠다는 한 친구의 말이 이해 되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꺼내 보아서 책장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뒷부분은 최근에 나온 책을 구해 읽었다. 어쨌든 '다읽'은 손때 묻은 책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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