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라비아의 로렌스

샌. 2020. 8. 21. 10:53

이 영화를 언제 봤는지 가물가물하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닥터 지바고'나 '사운드 오브 뮤직'은 기억이 선명한데 이 영화는 안갯속이다. 극장에서 개봉할 때 못 봤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에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았다. 영화의 스케일에 비해 컴퓨터의 작은 모니터로 본 게 아쉬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1962년에 나왔으니 60년 전 영화다. 촬영은 아마 50년대 후반에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를 고려하면 놀라운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이 데이비드 린(David Lean)인데 '콰이강의 다리' '닥터 지바고'를 만든 명장이다. 감독과 여기 나온 배우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특히 안소니 퀸과 오마 샤리프의 젊을 때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상미가 참 아름답다. 특히 사막 장면의 서정적인 분위기는 일품이다. 사막을 가로질러 아카바를 공격하는 중에 한 사람이 낙오한다. 뒤늦게 안 로렌스는 족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구해 온다. 이때의 신이 가슴 뭉클하면서 파란 하늘과 하얀 사막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만든다. 운명으로 체념하는 족장에게 로렌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소!"

아랍 내부 사정을 정탐하러 갔다가 아랍인을 좋아하게 된 로렌스는 영국군이지만 아랍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운다. 그러나 복잡한 정치 상황을 한 개인이 극복할 수는 없다.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10년대의 제1차 세계대전 중인 때다. 터키를 쫓아내고 아라비아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패권을 잡으려 한다. 아랍이 여러 나라로 갈라지면 독립하게 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로렌스라는 인간도 흥미롭다. 실제 인물이라는데 영화에서는 돈키호테 같은 기질이 많이 보인다. 로맨티스트로 보이다가 한순간에 살육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점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가 아랍의 지도자가 되어 아랍의 독립과 통합을 위해 싸웠다면 영웅 스토리를 만드는 비장한 최후를 마쳤을지 모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상영 시간이 3시간 40분이나 된다. 중간에 휴식 시간을 의미하는 'Intermission'이라는 자막이 뜬다. 옛날 영화는 이렇듯 호흡이 길었다. 이 영화에서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사막 지대가 '와디럼'이다. 현재 요르단에 있는데 직접 가 보기에는 이젠 너무 멀고 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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