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3) - 티벳 사자의 서

샌. 2020. 8. 27. 11:17

책 표지를 넘기니 내지에 이런 글을 적어 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은 마음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나니....

 

1996년 2월, 삶과 죽음의 신비!

1999년 12월, 지금 여기 나에게 주는 메시지

2002년 10월, 진리를 향한 길

 

읽었을 때마다 짧은 감상을 적은 것이다. 책에는 거의 메모를 남기지 않는데 <티벳 사자의 서>는 예외였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뭔가 새로운 개안을 한 느낌이랄까,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꾼 책이다. 역설적으로 <티벳 사자의 서>를 만남으로써 가톨릭 신앙이 오히려 더 깊어졌다.

 

<티벳 사자의 서>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라는 뜻이다. 인간의 죽음과 사후세계, 그리고 환생을 다루고 있다. 중심 단어는 죽음과 환생 사이를 의미하는 '바르도'다. 사자는 시간 진행에 따라 치카이 바르도, 초에니 바르도, 시드파 바르도를 경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자는 카르마의 업보로 빛을 따라가지 못하고 육체에 대한 욕망에 이끌려서 무수히 주어진 깨달음의 기회를 날려 버린다.

 

이 책은 저승의 세계를 보여준다기보다 지금 여기에서의 깨달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역시 바르도의 한 종류일 뿐이다. 바로도에서 사자가 체험하는 현상은 환상이라고 책에서는 수없이 강조한다.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인간의 삶이란 윤회의 수레바퀴를 통해 궁극적 목적에 다가가는 과정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신비하면서 영적인 통찰을 주는 책이 분명하다. 에반스 웬츠가 쓴 해설에 이 책의 가르침이 요약되어 있다.

 

1. 윤회계의 모든 존재들이 처한 상황과 장소와 조건들, 그리고 인간계와 천상계와 지옥계들은 모두 전적으로 현상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단지 현상(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2. 모든 현상은 윤회하는 마음에게만 나타나는 것일 뿐 실제로는 덧없는 것이고, 환영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 천신들이나 악마들이나 신령들이나 중생들과 같은 존재들은 사실 어떤 곳에도 없다. 이 모두는 원인에 의존한 현상일 뿐이다.

4. 이 원인이란 육체적인 감각과 변하기 쉬운 윤회의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5. 이 원인이 완전한 깨달음으로 극복되지 않는 한 죽음은 태어남을 뒤쫓고 태어남을 죽음을 뒤쫓아, 현명한 소크라테스까지도 믿었듯이 그것은 끝이 없다.

6. 사후세계는 그 조건만 다를 뿐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진 현상들의 연속이다. 이 두 세계는 똑같이 카르마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7. 바르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이 생에서 어떤 행위를 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8. 심리학적으로 그것은 꿈의 연장이다. 일종의 4차원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꿈꾸는 자의 생각에 담긴 내용들이 곧바로 환영으로 나타난다. 그런 영상들이 그곳에는 가득차 있다. 만일 좋은 카르마를 지녔다면 행복하고 천국 같을 것이고, 나쁜 카르마라면 비참하고 지옥 같은 환영들일 것이다.

9.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지 않으면 카르마 법칙에 따라 바르도 세계로부터 곧바로 인간 세계에 환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10. 완전한 깨달음은 윤회계가 또는 존재 그 자체가 하나의 환영이며 실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깨닫는 데서 얻어진다.

11. 이런 깨달음은 인간 세계에서도 가능하고, 인간 세계에서 맞이하는 임종의 순간에도 가능하며, 사후세계의 바르도 상태에서나, 아니면 인간계가 아닌 어떤 다른 세계들에서도 가능하다.

12. 명상 수행, 다시 말해 '바른 지식'에 이르기 위해 마음을 집중할 수 있도록 사념을 조절하는 수행은 필수적이다.

13. 이 명상 수행은 스승 또는 교사의 가르침을 받을 때 가장 효과적이다.

14. 이번 세계의 주기에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위대한 스승은 고타마 붓다이다.

15. 그의 가르침은 그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죽음과 환생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윤회의 대양을 건너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해, 아득한 세월 이전부터 수많은 붓다들이 인간 세계에 폈던 것과 똑같은 가르침이다.

16. 아직 환영의 그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 세계나 다른 세계들에 존재하는 영적으로 더 많은 깨달음에 이른 보살들이나 스승들은 자신들보다 뒤쳐져 도(道)의 길을 걸어오는 제자들에게 거룩한 축복과 능력을 베풀 수 있다.

17. 모든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윤회계로부터의 해방이다.

18. 이 해방은 니르바나(모든 고통과 번뇌가 끊어진 경지)를 실현하는 데서 얻어진다.

19. 니르바나는 극락과 천상계와 지옥계와 그 밖의 모든 세계들은 초월한 경지이며, 윤회에서 벗어나 있다.

20. 니르바나는 온갖 슬픔의 소멸이다.

21. 니르바나는 존재의 근원이다.

 

확신하건대 <티벳 사자의 서>는 지금 여기서 적용되는 깨달음의 책이다. 빛의 가르침을 따르라!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요사이 <금강경>을 읽고 있는데, <티벳 사자의 서>는 <금강경>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드파 바르도에 나오는 구절은 이렇다. "밝고 순수하고 티없이 맑으며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한 무위(無爲)와 무집착의 상태에 그대의 마음을 머물게 해야 한다."

 

내가 읽은 책은 1990년대에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것으로 류시화 선생이 번역했다. 당시에는 정신세계사에서 좋은 책을 많이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의 서문에 이런 글귀가 있다.

 

생은 다만 그림자.

실낱 같은 여름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

그리고 얼마큼의 광기.

그것이 전부.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살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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