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1) - 선의 황금시대

샌. 2020. 8. 4. 10:54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옛 책을 다시 읽기로 한다. '다읽'은 '다시 읽기'의 줄임말이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것 중 하나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이다. 방안을 가득 채우던 많은 책을 버렸을 때, 차마 떠나보내기 아까운 일부 책은 남겨 두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읽어야지, 했는데 그때가 지금인 것 같다.

 

'다읽'의 첫 번째 책은 중국의 오경웅(吳經熊) 선생이 쓴 <선禪의 황금시대>다. 선(禪)에 관한 안내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선승의 생애와 일화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선의 핵심을 풀이했다.

 

지은이인 오경웅 선생은 가톨릭 신자인 것이 특이하다. 1899년 중국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바티칸 교황청 공사로도 근무했다.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선의 황금시대>에는 육조 혜능(638~713)부터 법안 문익(885~958)까지 약 300년간 당나라에서 선의 불꽃을 들어 올린 선사들이 나온다. 중국에서 선불교가 태어난 것은 그만한 정신적 바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은이는 선의 씨앗을 도가(道家)에서 찾는다. 쉽게 말해 인도에서 들어온 불교와 도가 사상이 결합해서 선불교라는 독특한 정신세계가 구축되었다고 봐도 되겠다.

 

책에 나오는 여러 선사의 생애와 일화는 깊은 감동을 준다. 그분들의 진리를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체험에서 오는 통찰, 직관과 독립 정신은 인간 정신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 그분들이 도달한 깨달음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직접 맛보지는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낀다.

 

선불교는 기존의 종교 교리에 대한 철저한 반동이어서 매력이 있다. 깨달음이란 우상 파괴, 동시에 자기 부정에서 시작한다. 선사들의 깨달음의 순간은 자신의 관념이 헛된 망상이었음을 알아차릴 때였다. "나를 잃음으로써 나를 찾는다"를 선불교만큼 철저히 파고드는 종교도 없는 듯하다.

 

선사들이 깨달음에 이른 계기는 다양하다. 스승의 고함에, 또는 몽둥이에 맞는 순간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선에는 어쩔 수 없이 일종의 광기가 스며 있는 것 같다. 아둔한 자를 깨우는 충격 요법이다. 그러나 반대도 있다. 변소에 앉아 있다가 청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크게 깨달은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복숭아꽃을 보는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모아서 분류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이 책 <선의 황금시대>는 1986년에 경서원에서 나왔다. 내가 본 책은 1998년에 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오경웅 선생이 썼고, 류시화 선생이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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