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해 왔는지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책이다. 생물체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듯이, 신 개념도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다. 신은 고정된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개념임을 아브라함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보여준다.
이 책 <신의 진화(The Evolution of God)>는 미국의 저술가인 로버트 라이트가 썼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과학자답게 종교 역시 그런 틀로 설명하고 있다. 상당히 방대한 내용이면서 종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미신적인 신앙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원시인들은 두려움에서 신을 찾았을 것이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을 거쳐 고대 국가가 들어서면서 종교도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종교는 불안을 해소하는 문화 진화의 한 기능에 더해 강자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변질되어 갔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일신 숭배가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변화였을 것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신도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이민족을 몰아내기 위해 잔인한 신이 필요했다.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몰살시키라는 명령을 자주 내린다. 사회가 안정되는 후대에 가면 적국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는 신이 나온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넌제로섬' 사회에서 요구되는 도덕률이기 때문이다. 로마와 같은 거대한 제국이 되면 이민족에 대한 포용 없이는 나라를 유지하기 어렵다. 보편적 사랑을 내세운 기독교가 나올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기독교의 발명' 'CEO 바울' '구세주가 된 예수' 같은 소제목만 봐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 예수'는 어떤 분이었을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와는 전혀 다른 분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만들어진 신'이 옳다면 '만들어진 예수'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신을 빌려와 아라비아를 통일했다. 메카 시대와 메디나 시대 때 그가 계시받는 신의 메시지는 당시의 정치 경제적 여건을 반영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알라 역시 아라비아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진화한다. 세 종교에는 비슷한 진화의 패턴이 있다.
지은이는 '도덕적 질서'를 강조한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적 상상력'은 칸트가 말한 '내 마음속의 도덕률'과 흡사하다. 이런 도덕적 질서의 원천이야말로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은 인류의 도덕적 진화를 이루는 바탕, 또는 정신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아브라함 종교의 통념인 인격신은 설 자리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도덕적 질서의 실재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공통 지점이기도 하다.
'도덕적 질서'는 앞으로도 종교가 살아남을 근거이기도 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의 종말을 점쳤지만 인간의 근원적인 갈망을 물질세계가 채워주지는 못한다. 앞으로도 종교가 할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때는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진행을 보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이 책은 준다.
책의 부제는 '종교와 과학, 문명과 문명 간의 화해는 가능한가?'이다. <신의 진화>는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특히 기독교인에게 추천한다. 신과 교회를 대하는 기존의 관점을 바꿔야 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