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4

나의 이력서

26년 전의 소동이 생각난다. 마광수 작가가 쓴 이 소설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작가는 긴급 체포를 당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 교수는 연세대에서 해임되고 연금을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 여파가 결국은 안타까운 자살로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왕따가 되어 명예를 잃고 생계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 는 마광수 작가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기존에 발표한 글에서 과거를 돌아본 내용을 추려 펴냈다. 2013년에 나왔으니 근작에 가까운 편이다. 마광수는 대표적인 천재형 작가다. 시대를 앞서간 반골 기질을 타고났으니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연애나 서클 활동 등의 화려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도 성적은 1등으로 졸..

읽고본느낌 2018.10.18

효도에 / 마광수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엃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

시읽는기쁨 2018.10.14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아니더라도 양철로 된 귀걸이, 반지, 팔찌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여자는 아름답다 화장을 많이 한 여자는 더욱더 아름답다 덕지덕지 바른 한 파운드의 분(粉) 아래서 순수한 얼굴은 보석처럼 빛난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가 없는 여인은 훨씬 덜 순수해 보인다 거짓 같다 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 뻔뻔스런 독재자처럼 적(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화장한 여인의 얼굴에선 여인의 본능이 빛처럼 흐르고 더 호소적이다 모든 외로운 남성들에게 한층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가끔씩 눈물이 화장 위에 얼룩져 흐를 때 나는 더욱 감상적으로 슬퍼져서 여인이 사랑스럽다 현실적, 현실적으로 되어 나도 화장을 하고 싶다 분으로 덕지..

시읽는기쁨 2017.09.09

왜 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몰두하지 못할까 / 마광수

노예들을 방석 대신으로 깔고 앉는 옛 모로코의 왕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노예들의 불쌍한 모습에 동정이 가다가도 사람을 깔고 앉는다는 야릇한 쾌감으로 나는 흥분이 되었다. 내겐 유일한 자유, 징그러운 자유인 죽음 같은 성욕이 나를 짓눌렀다. 노예들이 겪어야 하는 원인모를 고통에 분노하는 척 해보다가도 은근히 왕이 되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역시 내 눈 앞에는 왕의 화려한 하렘과 교태부리는 요염한 시녀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 얄미운 욕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나는 온갖 비참한 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굶어 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쾡한 눈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 할머니, 그런데도 통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왕의 게슴츠레한 눈과 피둥피둥 살찐 쾌락들이 머..

시읽는기쁨 201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