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6

반성 /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반성 / 함민복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손 세정제가 있다. 코로나를 예방하라고 관리사무소에서 마련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에는 습관적으로 세정제로 손을 닦는다. 남의 손이 닿은 버튼이 오염되었을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는 반성했다. 먼저 손을 닦고 버튼을 누를 수도 있지 않는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결과는 동일하다. 그런데 둘 사이에 마음가짐은 천양지차가 난다. 시인의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심이 지극하다. 실천 여부를 떠나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마음이 아름답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뭣이 중요한지는 내팽개쳐 놓고 엉뚱한 곁다리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시읽는기쁨 2021.01.06

의심하라

"가만히 있으라!" 배는 계속 기울어가는데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만 방송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그 말을 믿었고, 결국 삼백 명이 넘는 생때같은 생명이 수장되었다. 안타깝고 통분한 일이다. 갑판으로 대피하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이런 억울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으니 모두가 탈출하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앞장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렇지만 내가 인솔교사로 거기에 있었더라도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선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할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험보다..

참살이의꿈 2014.05.20

나도 그랬으니까

속 상하고 서운할 때마다 내가 고만했을 때를 생각한다. 나도 그랬을 테니까. 철없는 말과 행동으로 부모님을 아프게 해 드린 일이 얼마나 많았으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참으신 일들이 또 얼마나 되었으랴. 그렇게 생각하면 야속하다가도 마음이 풀어진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한테서 인정머리 없다, 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묘하다. 지금에 와서 그 말을 내가 다시 쓸 줄이야. 이제서야 외할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못난 인간은 늘 때늦게 깨닫는다. 그러니 제 분수도 모르고 역정내지 말라. 사실은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

길위의단상 2011.03.07

12월의 독백 / 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 12월의 독백 / 오광수 12월은 되돌아보는 달이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볼 때면 찬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매년 그랬다. 그래서 12월은 늘 아쉬움의..

시읽는기쁨 2006.12.18

자성(自省)

따스한 봄날도 어떤 때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황사가 몰려오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고요한 바다도 늘 물결이 일고 있다. 어떤 날은 큰 바람이 불어 세찬 파도가 일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쉽고 편안하게만 사는 집이 어디 있으랴. 바깥 일은 논외로 하더라도 가정 안에서도 부모-자식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물결을 일으킨다. 어떤 것은 잔물결로 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쓰나미가 되어 집안을 휩쓸어 버린다. 곱게 차려입고 화사한 웃음을 짓는 저 사람들의 표정 뒤에도 남모를 고통의 그늘이 서려있음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가 그 사람의 진면목은아닌 것이다. 사람들의 이면에서 이런 고(苦)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이 느껴진다...

길위의단상 2006.01.22

웰빙 유감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마시는 물이 화제가 되었다. "서울 부자들은 새벽에 뜬 한라산 약수를 비행기로 공수해 와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신다고 해." "몸에 좋다고 바다의 심해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웰빙을 실천하자면 돈이 많아야 한다니까."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식을 줄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보게되는 웰빙이란 무엇인가? 웰빙의 시초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웰빙 바람은 변질되어 뭔가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라지만, 웰빙도 몸과 건강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상품 판매와 소비에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덩달아 매스컴이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바닥에는 우리 ..

참살이의꿈 200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