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 4

어른 김장하

MBC TV에서 방송된 2부작 다큐멘터리인 '어른 김장하'를 봤다.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하며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여러 지역사회 운동을 지원한 김장하 선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선생은 제목에 나오는대로 우리 시대의 '어른'이신 분이다. 선생이 세상에 드러나는 걸 고사하셔서 직접 인터뷰는 하지 못하고 선생과 관련된 분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경남도민일보 기자였던 김주완 씨가 채현국 선생에 이어 다시 훌륭한 분을 소개해주어 고맙다. 언론이나 TV의 역할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44년생인 선생은 19세인 1963년에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사천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박리다매 전략으로 돈을 많이 번다. 10년 뒤 진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번 돈을 쌓아두지 않고 지역사..

참살이의꿈 2023.01.30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하다 사람 좋다 그기 다 욕인기라 사람 알로 보고 하는 말인 기라 겉으로는 사람 좋다 착하다 하믄서 속으로는 저 축구(芻狗) 저 등신 그러는 거다 우리 강생이 등신이 뭔 줄 아나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짚강생이가 바로 등신인 기라 사람 축에도 못 끼고 귀신 축에도 못 끼는 니 할배가 그런 등신이었니라 천하제일로 착한 등신이었니라 세상에 두억시니가 천지삐까린데 지 혼자 착하믄 뭐하노 니는 그리 물러 터지면 안 되니라 사람 구실을 하려믄 자고로 모질고 독해야 하니라 길게 말할 게 뭐 있노 우리 강생이 그저 할배랑 반대로만 살면 되니라 하모 그라믄 되니라! -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한 남편과 사느라 할매는 무지 고생을 했는가 보다. 손주를 앞에 두고 착하게만 살면 안 된다고 간절하게 당부한다. 정..

시읽는기쁨 2021.10.24

너무 착하면 안 돼

초등학교 1학년 때 일화다. 길을 걸을 때는 좌측통행을 하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쳤다.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교실 복도에서는 누구나 그대로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오면 장난치느라 천방지축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학교와 집을 오갈 때 마을길이나 신작로 왼쪽으로만 고집스레 다녔다고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선생님 지시는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내 행동을 동네 사람들이 신기해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커서야 들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고지식한 성향도 마찬가지다. 자랄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어른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말썽부리지 않고 어른 말씀에 순종하고 고분고분하면 착하다고 한다. 원래 착하다는 말은..

참살이의꿈 2019.12.17

인간의 선

고분고분하거나 말을 잘 들으면 착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어렸을 때는 이런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달라진다. 정신적 미성숙자가 아니라면 그런 칭찬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권위나 체제는 순종하는 인간을 원한다. 잘 길들여진 국민을 양성하는 것이 근대 교육의 출발점이었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목표를 내걸지만 속내는 지금도 여전하다. 착하다, 선하다, 바르게 산다는 의미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왜곡되어 있다. 선(善)이란 무엇인가? 그 사람은 선해, 착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라고 할 때 선하고 착하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 구조 자체가 선하지 않다면 개인의 선량함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체제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결..

참살이의꿈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