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8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세계 평화를 위하여!" 젊었을 때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자주 외쳤던 말이다. 젊은 날의 치기였을 망정 그 시절에는 세계와 평화를 언급할 정도로 스케일이 컸다. 요즈음 젊은이들과는 달랐다는 말이다. 물론 이 시대의 젊은이를 비난하고 싶은 심정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각박한 생존 경쟁의 장에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고담준론이 먹여 살려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마저 공개적으로 '교육부가 경제부처이며 대학은 산업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니 누구를 나무라겠는가. 7, 80년대에는 지금과는 성질이 다른 울분과 저항이 있었다. 그때는 대의(大義)를 논하고 이상을 좇던 시절이었다. 그럴수록 현실과의 괴리는 심해지고 지식인의 우울과 시름은 짙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참살이의꿈 2022.06.28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

이덕무 선생의 소품 글을 보다가 만난 구절이다. 에 실린 원문은 이렇다. 眉宇間 隱然帶出澹沱水平遠山氣色 方可與語雅致 而胷中無錢癖 얼굴에 은근하게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과는 더불어 고상하고 우아한 운치를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의 가슴 속에는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이 없다.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띤 사람', 주변에서 과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선비 정신이 살아 있던 옛날에는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욕망 충족을 위해 허기지듯 내달리는 현대 자본주의 인간 군상들에게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리라. 혹 있지만 내가 못 알아봤을 수도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일 테니까. 선생은 재물을 탐하는 속물근성에서 벗어난 사람의 얼굴을 '맑은 물과 먼 산의 기색'을 띠고 있다고 했다. ..

참살이의꿈 2020.06.08

버들가지는 꺾여도 / 신흠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이 변하지 않고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 신흠(申欽, 1566~1628) 도산서원에 있는 왕버들을 올린 블로그 글에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서원에 왜 버드나무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신흠 선생의 이 시에 답이 있다고 알려준 것이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이 시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지내셨다는데, 두 분은 시대가 다르니 퇴계 선생이 알았을 리가 없다. 시가 품고 있는 의미는 짐작하셨을 수 있다. 어쨌든 도산서원의 버드나무는 선비 정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상촌(象村) 신흠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

시읽는기쁨 2019.12.15

억만금을 준대도

옛사람이 현대인보다 지조 면에서는 몇 급 위인 것 같다. 그때는 선비 정신이란 게 살아 있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킬 건 지켰다. 현실에 야합하는 간신 무리도 있었겠지만, 명분과 가치를 중시하고 실천하는 사람을 존경했다. 그들은 현재의 고초를 기꺼이 감내했다. 당장의 이익보다 어떤 이름으로 남을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반면에 현대인은 즉물적이고 찰나적이다. 돈이 최고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실제 돈이면 안 되는 게 없고, 심지어는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다. 누구나 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가끔 생각한다. 억만금에도 팔 수 없는 내 안의 무엇이 과연 있는가? 백 억을 줄 테니 그걸 포기하라고 하면 "No!"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 억을 주겠다면 어찌하겠는가? 마지막까지 남는 게 있어야 그게 바..

참살이의꿈 2018.12.13

논어[234]

선생님 말씀하시다. "선비가 집안일을 못 잊어 하면 선비답지가 못하다고 할걸." 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 憲問 3 공자가 말하는 '선비[士]'는 벼슬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선비가 집안일에 신경을 쓰느라 국정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예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 큰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선비 소리를 들었다. 사랑방에서 책을 읽거나 찾아온 손님과 담소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농사나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소나기가 쏟아져도 마당에 널린 곡식조차 거둘 줄 몰랐다. 큰할머니는 자주 혀를 쯧쯧 찼다. 또, 남자애를 부엌에 들이지 않으려는 옛 교육 태도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

삶의나침반 2017.04.23

논어[230]

자로가 물었다. "어떻게 되어야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선선하고 떳떳하고 벙실벙실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지. 벗들에게는 선선하고 떳떳하며, 형제끼리는 벙실벙실해야지." 子路問曰 何如斯可謂之士矣 子曰 切切시시怡怡如也 可謂士矣 朋友 切切시시 兄弟 怡怡 - 子路 23 를 읽는 것은 옛 말씀에 비추어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한문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번역된 대로 뜻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벗들과는 바르고 의리 있으며, 형제들과는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형제들은 잘잘못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다. 벗들에게는 관대하면서 가족에게는 까다로운 것이 보통 사람들의 성향이 아닌가 싶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젠 제 위치를 찾아갈 때가 되었다.

삶의나침반 2017.03.19

논어[49]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리를 탐구한다 하면서 음식과 옷맵시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위인과는 탐탁스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 里仁 9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로 염려하지 말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의식주가 인간의 기본 욕구이긴 하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예수 공동체나 공자 공동체나 스승이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같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 하늘의 섭리에 대한 절대 신뢰다. 그러나 악의악식악주(惡衣惡食惡住)에도 불구하고 담담할 수 있는 갑남을녀가 얼마나 될까? 하물며 그걸 즐기는 경지랴.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며 누추한 집에 살면서도 안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고 공자는 칭찬했다. 에서 '선비[士]'라는..

삶의나침반 2013.09.16

식영정 소나무

담양에 있는 식영정(息影亭)은 조선 명종 15년(1560)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석천은 이곳에서 '식영정 20영'을 지었고, 송강 정철이 자주 찾아온 곳이다. 송강이 이곳을 무대로 성산별곡(星山別曲)을 지었다. 경내에는 서하당과 석천을 주향으로 모신 성산사(星山祠)가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식영정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적송 한 그루가 있다. 식영정에서 성산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서 있는데, 우람한 자태며 쭉 뻗은 기상이 대단한 소나무다. 마치 옛 선비들의 고고한 정신을 보는 것 같다. '선비'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구체적으로 선비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걸까? 사전을 찾아보니,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재물을 탐내지..

천년의나무 2013.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