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8

죽산 성지

죽산(竹山) 성지는 경기도 안성에 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부터 1871년 신미양요 때까지 스물네 명이 순교한 장소다. 처형지는 고려 때 몽고군이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진(夷陣)터라 불렸다. 당시 신자들 사이에서는 이진터에 끌려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잊은 터'라 했다고 한다. 거의 20년 만에 죽산 성지에 들러보다. 그때는 성지가 조성되기 초창기여서 잔디만 깔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여러 시설도 많이 들어섰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성지의 중심은 순교자 묘역이다. 가운데 무명 순교자 묘가 있고, 좌우로 24기의 순교자 묘가 있다. 신앙면에서 나는 지금 냉담 중이다. 아내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지켜보는 나는 냉랭하다. 성지에 와도 별다른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계속 무신..

사진속일상 2016.05.13

갈매못 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는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갈마연동(渴馬淵洞)이라 불렸던 곳이다. 갈매못은 그 갈마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866년 3월에 이곳 바닷가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오메트로 오 베드로 신부, 우앵 민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 등 5명이 순교했다. 당시는 고종 국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때라 한양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이곳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1846년에 프랑스 함대가 3척의 군함을 끌고 왔던 외연도가 가까운 곳이다.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이곳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

사진속일상 2013.11.02

우리나라 100대 명산

난 목표를 정하는 게 싫다. 그런 걸로 남이나 나를 다그치는 건 영 질색이다. 성인이 된 뒤로는 무엇이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사이 들어 등산 목표를 하나 세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100대 명산 목록을 보고 나서부터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죽기 전에 100산 정도는 올라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음이 100대 명산 목록이다. 좁은 국토인데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도 여럿 있다. 내가 정상을 찍었던 산은 붉은색으로 표시해 보았다. 수도권 15 감악산, 관악산, 도봉산, 마니산, 명성산, 명지산, 백운산, 북한산, 소요산, 용문산, 운악산, 유명산, 천마산, 축령산, 화악산 강원권 22 가리산, 가리왕산, 계방산..

길위의단상 2013.06.24

진천 농다리와 배티성지

아내와 진천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갔다. 퇴직한 후 일곱 달이 지났지만 함께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무엇에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 여유가 없었다. 진천 농다리[籠橋]는 중부고속도로를 다닐 때 곁눈질로 보기만 했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오늘에야 찾아가게 되었다. 직접 밟아보니 돌로 만든 다리는아주 튼튼했다. 장마가 져도 무너지지 않는다니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더구나 고려 초기에 처음 만들어졌다니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다리다. 다리는 길이가 94 m, 폭이 3.6 m다. 그런데 이곳 암석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띄는 게 특이하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쉼터,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초평저수지도 나온다. 그러나 산에 ..

사진속일상 2011.09.26

솔뫼성지 소나무숲

충남 당진에 있는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님(1821-1846) 의 탄생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신부님은 이곳에서 태어나 용인으로 이사갈 때까지 7 년을 살았다. 신부님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부터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많은 분들이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신부님도 스물여섯의 아까운 나이에 순교하셨다. 솔뫼의 '솔'은 소나무[松]를,'뫼'는 산[山]을 뜻한다. 솔뫼란 '소나무 산'이란 우리말이다. 그 이름으로 유추하건대 옛날부터 이곳에는 소나무가 무척 많았던 것 같다.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 뒤쪽에는 울창한 소나무숲이 아직 남아 있다. 옛날에 있었을 소나무숲의 일부일 것이다. 성지에 계신 신부님에게 물으니 대략 수령이 100년에서 200년 사이의 나무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대건 신부님이 어릴 때 ..

천년의나무 2011.04.11

절두산 성지에 가다

어제 오후에는 직장 가톨릭회 동료들과 절두산 성지에 갔다. 절두산이 한강 바로 맞은편에 있어 선유도를 거쳐 양화대교를 걸어서 건넜다. 맑았지만 황사가 약간 찾아왔고 바람 센 날이었다. 박물관 1층에는 새로운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순교성지에 들릴 때마다 마음은 착잡해진다. 목숨까지 버리며 지키려고 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확신에 과연 한 점의 의심도 없었을까? 천국에 대한 동경이 그토록 강렬했을까? 아니면 배교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던 것일까? 더구나 이분들은 가톨릭을 정통으로 배우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몇몇 지식인층 외에는 글도 못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 극심한 고통의 시간들을 이겨내게 했을까? 달콤한 회유를 물리칠 용기는 어..

사진속일상 2009.10.21

동료들과 미리내에 다녀오다

직장에 가톨릭 모임이 생겼다. 우선 눈에 띄는대로 일곱 명이 모였는데 열심한 사람에서 냉담자까지 일곱 빛깔 색깔의 구성원들이다.어제는 첫 나들이로 미리내성지에 다녀왔다. 마침 지나간 주일이 성 김대건 신부 순교자 대축일이었다. 미리내는 1800년대 박해 시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던 비밀 교우촌이었다. 산골 깊은 골짜기에 밤이 되면 천주교인들 집의 호롱불과 하늘의 별빛이 개울에 비쳐 반짝이는 게 은하수와 같다고 해서 '미리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한자로는 미리천(美里川)이라고 쓰고, 현재 행정명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속한다. 그런데 병오박해 때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뒤 새남처 백사장에 버려진 시신을 미리내의 한 청년이이곳으로 모셔오면서순교성지가 되었다. 당시 신부님의 나이는 25..

사진속일상 2009.07.07

절두산 성지

절두산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다. 이곳은 예전에 양화나루였던 곳으로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영조 이후에는 송파나루, 한강나루와 함께 서울의 삼대 나루로 상업적 기능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절두산은 양화나루 옆에 솟아있는 높이 약 20m 되는 암벽이다. 원이름은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峯)이었는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손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140년 전에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형을 당해서 그 이름이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나루까지 침입해 오자 대원군은 ‘..

사진속일상 2005.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