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9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여보게 친구,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마음속의 무심한 미움일랑 꺼내진 말고 사세. 우리도 이젠 중늙은이 파도에 떠밀리는 통나무같이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남몰래 지은 죄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으니 죽은 듯이 살아서 하늘이나 바라보세. 눈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안 보이면 눈짐작으로라도 하늘 뚫은 별자리 하나 미리 봐두세. 내일 일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묻어두세. -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표출하지 못하는 화가 쌓이면 화병이 된다. 특히 한국의 중년 여성에게 화병이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화병(Hwa-Byung)'이라는 병명까지 만들었다니 말이다.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나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읽는기쁨 2022.11.27

쌓이면 터진다

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오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상세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지구 내부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터전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지구가 지각, 맨틀, 핵으로 되어 있듯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측 수준이지 거의 무지하다. 인간이 지각의 표면만 겨우 건드렸을 뿐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지구의 내부처럼 신비에 싸여 있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요인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고 암석이 녹는다. 아마 천 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마그마가..

참살이의꿈 2022.08.19

사람 사는 곳인데

위층은 내 전화번호부에 '올빼미'로 명명되어 있다. 밤늦게서야 바빠지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가장이 늦게 퇴근하는 것인지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분주하다. 문제는 이 시간대가 내 잠자는 시간과 겹친다는 데 있다. 주로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에 깨어나면 조용해질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층간 소음 스트레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 아파트에 입주한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불편함을 전달하고 직접 만나서 호소도 했다. 그러나 생활 패턴이 쉽게 바뀔 수 없는 일이었다. 완벽한 해결책은 이사를 가야 했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 상태가 심해졌다. 어젯밤에는 참고 참다가 밤 12시가 넘어 문자를 넣었다. 작년인가 직접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알으켜주면..

길위의단상 2022.06.04

마음의 맷집

초등학생 때 A는 씩씩하고 담대해서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적어도 교실 안에서는 그랬다. 담임 선생님한테 야단이나 매를 맞을 때면 다들 무서워하고 벌벌 떨었지만 A는 달랐다. 뭘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냐면서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A는 술고래인 아버지한테 욕먹고 얻어터지는 게 일상이었다. 지게 작대기에 단련된 A의 몸이 선생님의 회초리는 애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와는 별개로 A의 몸은 살아남기 위해 맷집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리라. 맷집은 시련을 통해 생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리라.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가 야생의 풀과 경쟁할 수는 없다. 백신을 맞는 것도 같은 원리다. 병원균에 미리 노출시켜서 적응력을 생기게 하는 것이다. '호르메시스(Horme..

참살이의꿈 2021.08.09

감기와 스트레스

감기몸살이 진하게 찾아왔다. 닷새 동안 끙끙 앓고 나니 조금 사그라진다. 백수였기 망정이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훨씬 더 오래 끌었을 것이다. 감기에 걸려도 약을 안 먹고 견디는 편인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만큼 증상이 복합적인데다 특히 기침이 심했다. 블로그에 들어오기도 귀찮아서 며칠간 공백이 생겼다. 밖에 쏘다녔거나 무리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린 것은 올 초부터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 같다. 바이러스에 노출될 때 증상으로 연결되느냐 않느냐는 것은 면역력과 관계가 있다. 과로와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도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의 방어벽이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더구나 아내가 부재중이어서 더 힘들었다. 아픈 ..

길위의단상 2014.02.13

퇴직 스트레스

소화기능이 약해져서 두 주 이상 술과 커피를 끊었다. 신경만 쓰면 생기는 과민성대장증상이 재발했다.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잘 안 된다. 화장실을 들락거리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집에서 놀고 있는데도 몸무게는 줄어들고 있다. 요사이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주 원인은 퇴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의식은 퇴직을 반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기지만 무의식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아닌 척 한다고 내적 상실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퇴직이라는 충격파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인 이상 이 정도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며 자위한다. 시간이 지나면 새 생활에 안착할 것이다. 누군가가 사람이 겪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나타낸 걸 보았다. 배우자 사망 100 이혼 7..

길위의단상 2011.02.21

신학기병

직장인들에게 월요병이 있듯이 나에게는 그와 비슷한 원인으로 생기는 신학기병도 있다. 둘다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휴식 뒤에 찾아오는 후유증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월요병이나 신학기병이나 따분하고 지리한 일로 다시 돌아간다는 스트레스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지난 휴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 다시 억지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데 대한 심리적 긴장감이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서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병이라는 이름이 붙을 리는 없을 것이다. 어른들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 만나야 되는 사람들, 새로 해야 되는 일이나 공부의 중압감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상황과 대면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젊었을 때는 그런 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

길위의단상 2009.03.02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나요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거나, 아니면 어제 밤에는 스트레스 풀려고 술을 마셨다고 하면 사람들은 날 보고 대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구동성으로 묻는다. "선생님도 스트레스 받으세요?" 이러면 대략 난감해지는데, 내가 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도리어 더 스트레스에 시달린답니다." 웃으며 하는 그 말 속에는 물론 여러 의미가 들어있다. 사람들은 내 겉모습을 보고 스트레스 같은 것은 받지 않을 것으로 보는 모양이다. 좋게 보아주는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자신의 말 그대로 믿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각자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다를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짐을 가장 무겁게 느끼..

참살이의꿈 2007.12.02

소음 스트레스

성격이 별난 탓인지 나는 유달리 소음이나 번잡함을 견디지 못한다.자신을 방해하거나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의 인지상정이지만 다른 사람은 잘 견뎌내는 것도 나는 참지를 못하니 아무래도 유별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지하철을 탈 때 사람으로 꽉 차있으면 나는 타지를 않는다. 어떤 때는 20분 이상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지각을 하더라도 좀 덜복잡한 다음 차를 기다리는데 동행한 사람은 이런 나의 습성을 이해하지를 못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 몸과 몸이 부딪치며끼여 가는 게 죽기보다 싫다.휴가철에 유명 관광지의 사람들로 북적대는 풍경은 나에게는 지옥에 다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 구경하러 일부러 찾아간다는데 내 뇌 구조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

길위의단상 2007.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