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4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양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채집,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식물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고, 외국인들 손에 의해 조사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우리 고유 식물 5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를 비롯한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327종이나 된다. 무려 62%에 달한다. 슬픈 역사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식물 이름도 일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 정서와 동떨이진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본말에 더럽혀진 대표적인 경우다. 식민지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만약 우리 식물학자에 의해 주체적으..

읽고본느낌 2019.05.05

랩 걸

이 책의 저자인 호프 자런(Hope Jahren)은 여성 식물학자다. 풀부라이트 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2016년도에는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책 제목인 에도 나타나 있다. 책 초반부에는 소녀 시절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놀던 추억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책은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 설명에 대응하여 자신의 과학자로서의 일생을 보여준다. 나무가 씨앗에서 떡잎을 내고 성장하고, 시련을 겪으며, 꽃 피고 열매를 맺듯이 인간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자다운 구성이다. 책을 읽으며 제일 놀라운 점은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이다. 과학자가 맞아, 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작..

읽고본느낌 2019.03.09

식물의 인문학

지은이인 박중환 씨의 경력을 보면 50세까지 언론계에서 일하다 늦게야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IMF로 직장을 잃은 게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식물을 공부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숲이 인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은 그런 지은이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다. 책은 꽃, 잎, 열매, 뿌리의 네 단원으로 되어 있다. 물론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고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되었다. 계절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꽃을 피운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스트레스 개화 이론'이다. 고사 위기에 있는 소나무일수록 작은 솔방울이 많이 맺히는 걸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식물이 지구의 산소 공..

읽고본느낌 2015.10.21

산꽃 이야기 / 김재진

식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가령 산딸기가 하는 말이나 노각나무가 꽃 피우며 속삭이는 하얀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톱 한 자루 손에 들고 숲길 가는 동안 떨고 있는 나무들 마음 헤아릴 수 있다면 꿈틀거리며 흙 속을 사는 지렁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제는 사라져 찾을 길 없는 늑대의 눈 속으로 벅차오른 산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너로부터 닫혀 있는 나와 나로부터 닫혀 있는 너의 그 많은 창문들 하나하나 열어 볼 수 있다면 휘영청 달뜨는 밤 산꽃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 산꽃 이야기 / 김재진 라는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대학교에 다닐 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식물도 인간과 같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생각도 한다는 놀라운 내용이었다. 지금도 책 제목이 생각나는 걸 보면 당..

시읽는기쁨 201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