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휘 2

행복 / 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지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3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스무 살 뒷모습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지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 행복 / 심재휘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지인이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도시에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내온다. 강릉에는 바다 전망이 좋은 카페가 참 많은 것 같다. 지인은 인생이란 모름지기 재미있고 행복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약간은 질투가 나서일까, 나는 이 시를 차용하여 속으로 중얼거린다. "매일이 보람 있고 행복하다면 그 역시 힘겹지 않겠나.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날도 있어..

시읽는기쁨 2022.03.15

지독한 어둠 / 심재휘

아홉 살 딸아이는 어둠이 무섭다고 잠자리에 누워 말한다 나는 스텐드의 불빛을 가을 이불처럼 흐리게 덮어주고 나온다 그러면 딸아이는 오늘 밤 흉한 꿈을 꾸지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불 꺼진 거실에 서서 나의 어둠이 밝아지도록 한참을 기다린다 어둠 저편의 방으로 건너가기 위해 나의 눈은 그저기다릴 수밖에 없다 스텐드도 없이 변명도 없이 몸 하나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캄캄함 속에 서보면 안다 그러나 기어이 어둠보다 먼저 밝아오는 슬픔 언젠가는 너도 이 지독한 어둠 속에 결국 혼자 서 있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나는 온몸에 가난한 어둠을 묻히고 다시 딸아이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내 이불을 차버리고 잠든 모습이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서글픈 것이냐 - 지독한 어둠 / 심재휘 인간은 결국 지독한 어둠 속에 혼자..

시읽는기쁨 201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