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4

정치인의 얼굴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이웃에 살아 가끔 길에서 만나는데, 서로 목례를 하며 짧은 인사말 정도는 나눈다. 이분이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지인의 친구여서 짧은 상견례를 가진 적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여서 거리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는 인상이 후덕하고 푸근해서 누구에게서나 호감이 간다는 말을 들었다. 당선이 된 데는 그런 이미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무난한 의정 활동에 재선을 했으니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런데 요사이 얼굴은 많이 지치고 찌들어 보였다. 얼마 전에는 뒷산에서 마주쳤는데 표정이 영 말이 아니었다. 미소는 짓지만 얼굴에 배인 어두움을 지울 수는 없었다. 8년 전과 비교하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싶었다. 이분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정치인이 그..

길위의단상 2023.11.09

두 에피소드

아침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는데 출연자들이 얼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중 한 사람이 자신이 젊을 때는 동안(童顔)이라는 소리를 늘 들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반대로 다른 사람보다 빨리 노안(老顔)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언뜻 그에 얽힌 두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 1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나선 게 스물 세 살이었다. 만으로는 스물둘에 선생을 시작했다. 또래보다 한 해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군대도 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 역시 동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해 겨울에 예비고사 감독관을 나가게 되었다. 시험 전날에 수험생 예비 소집을 했는데, 고사장 운동장에서 출석 확인을 하는 게 감독관의 임무였다. 마이크로 전체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동안..

길위의단상 2020.11.16

얼굴은 정직하다

사람의 얼굴은 정직하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가 들어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느냐가 얼굴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닮는다. 그래서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은 옳다. 자신의 얼굴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는 얼굴도 있고, 평화의 따스한 기운이 피어나는 얼굴도 있다. 한 순간의 표정은 숨기고 관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출 수는 없다. 내면의 공력을 화장이나 얼굴 꾸미기로 위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말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꾸밀 수 있지만 얼굴은 어찌하지 못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관찰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사람의 ..

길위의단상 2006.10.30

얼굴 / 이성선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보면 나는 늘 미안해진다 수척하여 추운 듯 뼈만 남은 내 얼굴에 내가 미안해진다 때로 빛이 나고 윤기 있을 수도 있으련만 하느님이 얼굴을 주실 때에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을 텐데 안으로 향한 두 개의 큰 눈 외에는 어느 곳에 비추어 보이기가 부끄럽다 남 앞에 서기가 부끄러워서 하늘만 가끔 쳐다본다 하늘은 그래도 이해해 주시겠지 하고 잎 다 떨어진 가을 하늘이 제일 좋아서 쳐다보다 돌아와 백지 위에 비춘다 백지 위에는 추운 영혼의 시가 내 얼굴로 들어 있다. - 얼굴 / 이성선 어쩌다 거울을 보게 되면 거울 뒤에서 한 누추한 얼굴이 나를 보고 있다. 삶에 찌들고 욕심에 사로잡힌 사나이가 서 있다. 나는 거울 보기가 무섭다.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이 더욱 서럽기만 ..

시읽는기쁨 200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