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8

봉은사 홍매

봉은사 홍매는 서울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 지금이 만개 상태인데 색깔은 예상보다 선명하지 못했다. 지난 1월의 강추위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봉은사에는 꽃 구경하며 산책하며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홍매 외에도 백매, 산수유도 활짝 폈고 제비꽃도 눈에 띄었다. 봄한테서 기습 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참새들이 홍매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놀고 있었고, 옆의 나무 높은 곳에서는 흰꼬리수리(?)가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을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골 학교 운동회의 만국기를 보는 것처럼 설레었다. 사월 초파일 부근에 다시 한번 찾아와봐야겠다. 20여 년 전 봉은사 옆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는 점심을 먹고 나면 봉은사 숲길..

꽃들의향기 2023.03.14

조계사 연등(2019)

서울에 간 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 구경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사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매운 조계사 연등은 장관이었다. 경내에 있는 회화나무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꼭 사람처럼 보인다. 회화나무도 지금 열심히 연등을 매달고 계신다. 가련한 인간의 기원이 오색찬한한 연등으로 꽃 피고 있는 조계사다.

사진속일상 2019.05.08

길상사 연등

김영한과 백석과 법정 - 길상사(吉祥寺)가 세워진 인연이 연등의 색깔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무소유의 꽃으로 피어난 곳이다. 환락의 장소에서 청정 도량으로 변한 기적이 우리 마음밭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기다릴 뿐이다. 여건이 되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수천, 수만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흰 연등은 돌아가신 분의 극락왕생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길상사의 흰 연등은 세속의 집착을 버린 텅 빈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백석 시의 '흰 당나귀'와 연결되는 건 아닐까.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사진속일상 2019.05.04

신륵사

여주를 지나는 길에 잠깐 신륵사에 들렀다. 나에게 신륵사는 아련한 슬픔으로 젖어오는 곳이다. 저 석탑 옆 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속울음을 삼킨 적 있었다. 세월이 지나가면 다 나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다독였다. 그때는 시절의 배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한 상처가 아물고 다시 신륵사에 섰을 때 이번에는 4대강 사업으로 강변이 황폐화되고 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다시 신륵사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정리된 후의 모습은 그다지 흉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래사장이 있던 자연스런 강과 비교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두 감정 모두 이제는 많이 가라앉았다. 시대를 거역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나이도 되었다. 이제는 관조의 때라는 걸 안다. 선악의 칼날도 너무 날카로우면 자신을 벨 수 ..

사진속일상 2017.04.28

사월 초파일 칠보사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칠보사(七寶寺)가 있다. 사월 초파일 오후에 연등 구경을 하고 싶어 칠보사로 향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절이 꽤 분주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오전 행사 뒤 대부분이 돌아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연등은 기대보다 초라했다. 대웅전 앞에는 운동회가 열리듯 만국기가 펄럭였다. 스님은 평일인 듯 한가하게 산책하고 계셨다. 조계사 같은 큰 절의 화려한 연등이 너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사실은 이런 작은 절이 정상인지 모른다. 시주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대형 절의 연등은 보기에는 장관일지 몰라도 너무 뻐기는 폼이 부담스럽다. 내 복을 기원하는 게 자랑일 수 없다. 만약 설법이나 설교, 강론에서 복을 바라는 사람은 오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교는 부처가..

사진속일상 2016.05.14

불곡산과 대광사 연등

사월 초파일에 불곡산길을 걸었다. 분당 쪽 산자락에 대광사(大光寺)가 있어 하산하면서 화려한 연등 구경을 했다. 대광사는 천태종에 속한 사찰로 분당이 만들어지면서 신도시 주민의 포교를 목적으로 창건되었다.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큰 절인데 너무 규모가 커서 오히려 다가가기가 어렵다. 종교만은 현대의 물량주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종교 역시 세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힘든가 보다. 어쩌면 분당이라는 이미지와 대광사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아니다 하지만 밀려오는 스트레스는 어쩌지 못하겠는가 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상처를 받는다. 식탁에 놓인 약봉지에 더 마음이 아프다. 답답한 심정은 산길을 걸어도 덜어지지 않고, 5월의 숲도 위로가 되지..

사진속일상 2014.05.06

1,000km를 달린 여행

지난 토요일에 울산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먼 거리를 가면서 고작 결혼식만 달랑 참석하고 돌아오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친구도 만나보고, 황매산 철쭉도 구경하고, 주변의 나무도 찾아보기로 했다. 2박3일 일정의 동선이 마련되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섰는데 5시간이 걸려 울산에 도착했다. 사월 초파일이 들어간 사흘 황금연휴의 딱 중간 날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웃에서 함께 자란 고종사촌들인데 이젠 각자 일가를 이루고 먼 곳에 흩어져 산다. 오랜만에 만나서 듣는 사연에는 세월의 신산함이 묻어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범어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했다. 마침 저녁때라 연등에 환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범어사 앞 모텔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오전에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사목을 ..

사진속일상 2013.05.21

조계사 연등

퇴근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빨강, 분홍, 초록, 노랑, 파랑의 무수한 연등들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계사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저 연등 하나 하나에 깃들어 있는 사람들의 기원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부처님이 왕궁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분이 도달한 구경각(究竟覺)의 경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교의 사상은 심오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공(空)이라든가 무심(無心), 무소유(無所有)의 지향은 늘 내 가슴을 설레게한다. 비록 지금은 기복적인 경향이 커졌지만, 그러나 깨침에 이르려고 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은..

사진속일상 200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