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11

인생은 독고다이

"여러분, 인생은 혼자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사십시오. 여러분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여러분 자신이고,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세요. 누군가 멋진 말로 나를 이끌어주길, 나에게 깨달음을 주길, 내 삶이 더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세요. 그런 사람들 무리의 먹잇감이 되지 마세요. '인생 독고다이다' 생각하고 쭉 가세요." 지난달에 이효리 씨가 국민대 졸업식에 참석해 후배들에게 전한 인생 조언이다. '독고다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성격대로 직설적이면서 소탈한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한다.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 후배들을 위한 연설이었지만 7학년인 나는 내 식..

참살이의꿈 2024.03.20

혼자 사는 사람들

진아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여자다. 혼자 살면서 집과 회사(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만을 오가는 생활을 한다. 동료들과 대화도 없고, 점심도 외딴 식당에서 혼자 먹으며, 출퇴근 때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 화면만 본다. 휴대폰에 집중하는 것은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신호와 같다. 외부와 단절된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패턴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 두 가지가 생긴다. 하나는, 신입사원 수진을 1:1로 연수를 시켜야 하는 일로 진아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붙임성 좋은 수진에게 매몰차게 대하지만, 솔직하고 관계를 중시하는 수진을 보며 진아의 마음에는 미묘한 파장이 인다. 다른 하나는, 홀로 사는 옆집 남자가 고독사한 지 일주일 만에 발견된 사건이다. 뒤이어 입주한 남자는 떠난 사람..

읽고본느낌 2023.12.26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괜찮니"라고 말을 걸어도 금세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노엽고 외로운 때가 있을 겁니다. 내 신발 옆에 벗어놓았던 작은 신발들 내 편지봉투에 적은 수신인들의 이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던 말소리들은 지금 모두 다 어디 있는가. 아니 정말 그런 것들이 있기라도 했었는가. 그런 때에는 연필 한 자루 잘 깎아 글을 씁니다.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손톱에 대하여 문득 발견한 묵은 흉터에 대하여 떨어진 단추에 대하여 빗방울에 대하여 정말 그럴 때가 있을 겁니다. 어디 가나 벽이고 무인도이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 정말 그럴 때가 / 이어령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강도야 다..

시읽는기쁨 2023.06.06

감정손해보험 / 이종섶

노후에 맞닥뜨리게 될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 노후가 아니더라도 어느 날 사고처럼 다가올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서 감정손해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한 달에 한 번씩, 또는 그 이상의 기회를 만들어 보험료를 지불한다 성실한 납부자, 그러나 가난한 납부자 돈이 많다면 감정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진 게 없으니 실비 보상 정도의 감정보험이라도 들어놔야 안심이 된다 혼자라는 것, 친구가 없다는 것 이대로 흘러가면 어느 순간 감정의 대형 사고에 직면하게 될지 몰라, 그 내상의 두려움을 아는 자로서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오늘의 외로움과 내일의 쓸쓸함이 그때마다 보험료를 인출할 것이다 감정보험에 일찍 가입해서 다행이다 오늘의 감정을 견디기가 쉬워졌다 - 감정손해보험 / 이종섶 양재에 나가 ..

시읽는기쁨 2022.01.07

외로움이 필요한 시대

외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면 정신이 튼튼해지지 못한다. 내면이 허약한 사람이 밖에서 위안을 찾는다. 전철에 타 보면 열에 아홉은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심심한 걸 견디지 못한다. 아무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연다. 기갈에 시달리는 사람들 같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허전해서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스마트폰은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을 빼앗아간다. 현대인이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안다. 외로워야 할 권리를 스스로 반납하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놀 줄 모르는 무능력자가 되어 간다. 어른만 그런 게 아니다. 식당에 가 보면 어린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가 많다. 만화영화에 빠져서 얌전해지기 때문이다...

참살이의꿈 2016.05.09

등대지기 / 진이정

외로운 이는 얼굴이 선하다 그 등대지기도 그랬다 그의 일과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일어나자마자 깃발을 단 뒤 한바퀴 섬을 둘러보는 일, 잰 걸음으로 얼추 한 식경이면 그 섬을 일주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곳에서 산보나 하며 살고 싶었다 한 식경이 너무 과하다면 몇 걸음 디디지 않아 이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어린 왕자의 알사탕 별일지라도 외로운 이는 마음이 고르다 그 등대지기도 그랬다 심심할 땐 바이블을 읽는다던 그는 할망당의 굿을 믿는 토종 인간이었다 하찮은 잡귀일지라도 박대해선 안된다는 것을 어질지 않은 탐라의 바다에서 애써 깨우쳤는지 그는 만물에 대해 겸허했다 외로운 이는 가슴이 저리다 안개 조짐이 있던 날 나는 떠났다 떠나는 나를 위해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가 길게 길게 안개 신호를 울려주었다..

시읽는기쁨 2015.03.13

아흔 즈음에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아흔 살, 백 살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인문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아흔 가까이 된 인생의 끝자락에서 쓰신 귀한 글 모음이다. 나이 든다는 것과 죽음에 대하여, 옛 시절의 회상, 이웃과 자연에 대한 단상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노년에 찾아오는 지루한 시간과 외로움을 선생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이백사십 시간 같다고, 아예 가지고 오지고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시간, 옴짝달싹 않는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들고 만 것 같다고 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늙을수록 자주자주 외로움에 젖는다. 마음이 풀기 가신 갈잎 꼴로 버석대는 걸 바라본다. 나이가 드는 것과 고독을 타는 것은 정비례한다. 늙을수록 도시에서 친구들이 많은 데서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

읽고본느낌 2014.05.21

쓸쓸 / 문정희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 글씨로 써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 잔을 권할 때도 있네 이윽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

시읽는기쁨 2013.03.18

만추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끼리 알아보는가, 사랑의 상처에 마음을 닫은 애나는 시애틀로 가는 버스 안에서 훈을 만난다. 훈은 돈을 받고 여자 파트너가 되어 주는 남자다. 애나는 남편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녀는 어머니 장례식에 가기 위해 3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애나 역은 탕웨이, 훈 역은 현빈이다. 영화 배경은 안개 낀 시애틀이다. 영화는 잔잔하고 애잔하게 흐른다. 둘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랑에 빠진다. 훈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접근했지만 애나의 표정에 끌리고, 무뚝뚝한 애나는 훈에게 마음을 연다. 사람이 사람과 가까우지는 건 많이 알아서가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애나는 가족과도 무덤덤하다. 가족들은 유산으로 서로 싸운다. 애나의 오빠 친구와 훈 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 그가 말한다. "니..

읽고본느낌 2011.03.03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 정호승 그런 시절이 있었다. 너무 외롭고 답답했다.내 속마음을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었다. 술만 마시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이 시의 따스한 손길에 또 울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싯구 하나하나가 가슴에 파고들었..

시읽는기쁨 2010.05.08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때가 언제 있었으랴. 그러나 가을이 되면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느껴지면 이 정체모를 괴물은 어디선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나를 에워싼다. 가을이 되면 어디엔가 숨어있던 외로움이 아픈 생채기를 만들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는개에 젖어들 듯 마음은 외로움에 빠져 헤어나기 힘들어진다. 가을의 외로움은 특정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니다. 가을의 외로움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숙명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이다.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고, 갈대숲도 도요새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가을의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은 영혼의 갈증이다. 인간..

사진속일상 2006.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