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지면서 우울한 날이 있다. 그런 때는 운동화 끈을 매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집안에 있으면 어두운 감정의 늪에 점점 빠져들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오랜만에 걸어보는 경안천이다. 경안천에는 한낮이 되었는 데도 아침 서리가 남아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겨울 햇빛을 정면으로 쬐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날 수록 햇볕에 서리가 녹듯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못난 '나'가 내 안에서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두 시간여를 걷고 시장 안에 있는 단골 순댓국집에 들어간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라 식당 안은 손님 너덧 명이 있을 뿐 조용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