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4

공산토월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문구 작가의 대표 중단편을 모은 책이다. 연작소설인 '관촌수필'에서 네 편, '우리동네'에서 두 편, '유자소전' 등 기타 단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대표작인 '관촌수필(冠村隨筆)'은 두 번째 읽어보는데 마음 밑바닥을 흔드는 감동은 처음과 같았다. 작가의 자전소설인만큼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그 시절의 현장에 함께 있는 듯했다. 이 책에는 네 편이 담겨있는데 '일락서산(日落西山)'에는 작가의 할아버지, '행운유수(行雲流水)'에는 옹점이, '녹수청산(綠水靑山)'에는 대복이, '공산토월(空山吐月)'에는 신석공이 나온다. 다시 읽어봐도 제일 끌리는 인물은 역시 '행운유수'의 옹점이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옹점이를 만났다. 작가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열 살 위의 소녀 옹점이는 ..

읽고본느낌 2023.08.17

부지깽이 / 이문구

시골집 나뭇간엔 작대기감도 말뚝감도 안 되어 그냥 노는 막대기가 많은데 어느 날 부지깽이가 되면 부뚜막에 오른 개 엉덩이도 때려 주지만 불을 때며 아궁이를 들락거리며 불땀 없는 땔감을 괄게 태우고 잉걸불 끌어내어 화로에 담으면서 제 몸을 태우고 또 태우고 해 하루가 다르게 짧아지다가 드디어 아궁이에 던져져서 불덩이가 되곤 했지 - 부지깽이 / 이문구 고향집 사랑방은 지금도 아궁이에서 불을 때 난방을 한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해 놓은 나뭇더미가 가득하다. 내려가면 군불을 넣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예 내 담당이 되었다. 옛날과 달라진 점은 성냥 대신 일회용 라이터를 쓰고, 부지깽이보다도 철로 된 집게를 더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부지깽이가 없어서는 안 된다. 부지깽이를 쥘 때는 어린 시절을 내 손에..

시읽는기쁨 2016.10.18

관촌수필

오래전에 읽다가 만 소설인데 이번에는 아주 재미있게 완독했다. 젊었을 때는 이런 소설 읽기가 힘들었는가 보다. 무엇이건 때가 무르익어야 자연스레 된다. 에는 고향의 정경과 인정이 토속어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 있다. 문체에서도 고전적인 향취가 난다. 사라져 간 고향과 사람들을 이만큼 서정적으로 묘사한 글도 만나기 어렵다.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특히 충청도 지방의 사투리가 작품의 맛을 더한다. 자전적 소설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어휘를 구사하자면 많은 공부와 노력이 들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의 집은 한산 이씨의 잘 나가는 양반이었다. 증조부는 상주목사를 지냈다. 그러나 육이오 전쟁을 겪으면서 집은 풍비박산이 났고, 작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읽고본느낌 2015.01.12

저녁상 / 이문구

멍석 펴고 차려 낸 저녁상 위에 방망이로 밀고 민 손국수가 올랐다 엄마는 덥다면서 더운 국물을 마시고 눈 매운 모깃불 연기 함께 마시고 아기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집어도 집어도 반은 흘리고 강아지는 눈치 보며 침을 삼키고 송아지는 곁눈질로 입맛 다시고 처마밑의 제비 식구 구경났구나 둥지 밖을 내다보며 갸웃거리며 누가 먼저 일등 먹고 일어나는지 엄마 제비 아기 제비 내기하는구나 - 저녁상 / 이문구 유년의 고향집 멍석 위 저녁상 자리는 제비집 밑이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제비 새끼들은 고개를 내밀고 재잘거렸다. 마당에는 워리가 지켜보고 있고, 외양간의 소는여물을 미리 먹고 되샘길질을 하고 있었다. 이 동시의 풍경이 그대로 내 어릴 적 여름철 저녁상 자리였다. 옛날에 살던 집은 허물어졌고, 마당가에 있던 ..

시읽는기쁨 2007.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