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저녁상 / 이문구

샌. 2007. 9. 12. 10:50

멍석 펴고 차려 낸 저녁상 위에

방망이로 밀고 민 손국수가 올랐다

 

엄마는 덥다면서 더운 국물을 마시고

눈 매운 모깃불 연기 함께 마시고

아기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집어도 집어도 반은 흘리고

강아지는 눈치 보며 침을 삼키고

송아지는 곁눈질로 입맛 다시고

 

처마밑의 제비 식구 구경났구나

둥지 밖을 내다보며 갸웃거리며

누가 먼저 일등 먹고 일어나는지

엄마 제비 아기 제비 내기하는구나

 

- 저녁상 / 이문구

 

유년의 고향집 멍석 위 저녁상 자리는 제비집 밑이었다. 바로 머리 위에서 제비 새끼들은 고개를 내밀고 재잘거렸다. 마당에는 워리가 지켜보고 있고, 외양간의 소는여물을 미리 먹고 되샘길질을 하고 있었다. 이 동시의 풍경이 그대로 내 어릴 적 여름철 저녁상 자리였다.

 

옛날에 살던 집은 허물어졌고, 마당가에 있던 밤나무와 감나무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어디 그것만이겠는가. 이젠 제비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가족 같았던 소나 강아지도 없다. 저녁으로 손국수를 해먹던 가난과 함께 오순도순 사람 사는 정도 함께 쓸려 나갔다. 사람들은 제비가 찾아오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고, 마을에 농약 냄새가 진동해도 수확의 보상이라면 상관하지 않는다. 이젠 다시 만나지 못할 철 없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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