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 굽은 곡선 / 정현종

샌. 2007. 9. 19. 15:28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 그 굽은 곡선 / 정현종

 

달팽이의 길, 지렁이의 길은 곡선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조개가 기어간 흔적도 곡선이다. 고향 마을 뒷산에 난 오솔길도 곡선이다. 꼬부랑 논둑길의 다랑이논은 늘 정겹다. 해와 달도 곡선을 그리며 하늘길을 간다.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는.....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직선은 문명의 모습이고, 곡선은 자연과 생명의 모습이다. 그 굽은 곡선에 평화의 노다지가 숨어있다. 노다지라는 말은 'No Touch'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진정 평화를 바란다면 못 견디게 좋은 그 굽은 곡선을 그대로 두라. 노다지!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심(違心) / 이규보(李奎報)  (2) 2007.10.02
찰나 속으로 들어가다 / 문태준  (2) 2007.09.28
소 / 권정생  (1) 2007.09.18
저녁상 / 이문구  (0) 2007.09.12
부패의 힘 / 나희덕  (0) 200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