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8

다읽(7) - 거꾸로 사는 재미

1983년에 펴낸 이오덕 선생의 수필집이다. 주로 70년대에 선생이 쓴 글이 주제별로 모여 있다. 1부는 자연, 2부는 삶에 대한 성찰, 3부는 시론(時論), 4부는 교육 수상이다. 선생의 글은 가식이 없고 진솔해서 좋다. 기교를 부리거나 장식 많은 글이 아니다. 선생의 고결한 성품이 배어 있다. 담박한 글맛을 느끼기에 아주 좋다. 겉 포장에 능숙한 시대에 선생의 글을 읽으면 더운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쐬는 것 같다. 내가 다시 꺼내서 읽어본 는 2006년에 산처럼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거꾸로 사는 재미'라는 제목이 언제나 마음을 끈다. 세상의 흐름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내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살아가면서 재미까지 더해진다면 이미 보통 경지에 오른 분이 아닐 것이다. 이오덕 ..

읽고본느낌 2020.11.09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1973년에 만난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이 선생은 마흔아홉, 권 선생은 서른일곱이었다. 아동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분은 인생의 도반이 되어 사귀었다. 1976년 5월 31일 권 선생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 숨어 살던 권 선생을 세상에 알린 분이 이오덕 선생이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책 출판을 도와주었다. 권정생 선생이 평생을 병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편지를 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 편지에서도 이 선생이 염려할까 봐 제대로 밝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썼다는 말이 맞을 것 ..

읽고본느낌 2017.10.10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밤낮 침대에 누워 있자니 등뼈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래도 낮에는 정우가 안아서 잠시라도 앉아 있지만 밤에는 누워서 꼼짝 못 한다. 수건을 등뼈 양쪽 깔아 달라 해서 겨우 견디는데 이번에는 발뒤꿈치조차 아프다. 그래도 꼼짝 못 한다. 이건 아주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산 송장이다. 정말 밤마다 나는 관 속에 들어가 생매장되어 있다가 아침이면 살아난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또 죽었다가 살아나고 고것 참 재미있구나.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앞으로 내가 몇 평생 살는지 고것 참 오래 살게 되었네. -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2003년 8월 20일에 쓴 선생의 마지막 시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8월 20일 새벽에 선생은 숨을 거두었다. 8월 14일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선생은 검사도..

시읽는기쁨 2017.10.09

뒷산 진달래

뒷산의 진달래가 활짝 폈다. 옛날에 산을 쏘다니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한 움큼씩 따먹던 꽃이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다. 어느덧 50년 전 일이다. 진달래는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인다. 아직 나무의 초록잎이 나오기 전이다. 고운 색감이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슬픔과 처연한 감상이 묻어 있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성정과 닮았다. 가장 한국적인 꽃을 고르라면 진달래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진달래'를 쓴 때는 1950년대 중반이었다. 막 전쟁이 끝난 힘들고 고달팠던 시대였다. 헐벗은 강산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며 선생은 가날픈 희망이나마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진달래가 한창인 산길을 걸었다.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뭇군의 ..

꽃들의향기 2015.04.10

감자를 깎는다 / 이오덕

3시에 일어나 불을 켜고 어제 못다 본 신문을 읽는데 석 줄도 안 나가서 꾸벅꾸벅 그렇다고 누우면 잠은 달아난다. 서너 줄 읽다가 눈 감고 잠깐 쉬고 다시 읽다가 꾸벅꾸벅..... 그렇다, 감자를 깎자. 이럴 때 나는 감자를 깎는다. 감자는 모조리 밤알만큼 한 것들 그것도 겨울 난 감자라 싹이 나고 시들시들 골아 버린 것을 무주 산꼭대기에 사는 강 선생이 갖다 준 댕댕이바구니에 담아 와서 왼손잽이 등산칼로 깎는다. 이 조무래기 감자는 그대로 찌면 아려서 먹기가 거북해 그래서 깎는 것이고, 깎는 재미로 깎는 맛으로 깎는 것이다. 왼손잽이 내 손은 야구나 정구를 하면 놀림바탕이 되었지만 감자 깎고 밭 매고 풀 베는 데는 아무도 흉보는 사람이 없었지. 감자를 깎으면 생각나는 것이 또 많다. 무엇보다도 아주 어..

시읽는기쁨 2013.07.19

새와 산 / 이오덕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 새와 산 / 이오덕 사랑방에 장작으로 군불을 넣고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책을 본다. 졸리면 자고, 배 고프면 밥 차려먹고, 한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밖에는 찬 바람 소리 마른 나뭇가지를 울리며 지나갈 뿐 시골의 겨울은 인적 그쳐 적막하다. 폭설이라도 내려 길마저 끊어진다면 더욱 반길 일이다. 방학에 들기 전 이런 계획을 말했더니 모두들 부러워했다. 오늘 고향에 내려간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넓고 따스한 고향의 품을 찾아간다. 지난 추석 이후에 허리 핑계를 대며 발걸음을 못한 터라 더욱 반갑다. 한 번 내려왔다가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도 기다림이 묻어 있었다. 한 일주일 원없..

시읽는기쁨 2010.01.08

내 꿈

겨울비가 내린다. 가늘고 곱게 내린다. 닫힌 창문 사이로 낙숫물 소리가 똑 똑 여리게 들린다.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이 계절은 방안의 기온만큼 썰렁하다. 초겨울의 빗소리를 들으며,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은 우리 글과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참 교육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 '악마들이 하는 짓을 경고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이런 맑은 날에도 하늘은 그 옛날의 하늘빛이 아니다. 흐릿한 잿빛이 좀 섞인 파란빛이다. 산을 보면 여름과 다름없이 흐릿하고, 먼 산은 잿빛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언제나 매연으로 덮여 있고..

참살이의꿈 2004.12.05

감자를 먹으며 / 이오덕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 그대로 작은 잡지가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우리 나라 초등 교육과 우리 말 가꾸기 운동에 일생을 보내신 올곧은 선비셨습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으로도 소개가 되었었지요. 권정생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교유를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좀 길기는 하지만 시 전문을 옮겼습니다. 저같은 중년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어릴적 추억에 젖게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전 감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리기도 했지요. 이 시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감자가루를 삭혀서 만든 쫄깃쫄깃한 감자떡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시냇가에서 감자 구워 먹는 묘사, 너무나 생생해서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어른이 되어서..

시읽는기쁨 2003.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