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19

유유히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이다. 12월 3일 이전에 고른 것이지만 묘하게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맞아떨어졌다. 어제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국민이 준 권력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광란의 칼춤'을 추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누구의 말대로 그는 오로지 '자신을 탄핵시킬 능력'만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번 탄핵 과정에서 국회 앞에 모여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시민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는 8년 전의 촛불 시위와 달리 10대와 20대의 여성들이 많이 나왔다. 정치에 무관심한 MZ세대라고 폄하했었는데 내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를 축제 마냥 즐기는 그..

참살이의꿈 2024.12.15

둘째네 집

둘째네는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산다. 구조가 특이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다락방이 있고, 옥상에는 마당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있다. 공중에 만든 단독주택에 사는 것 같다. 옥상에 서면 하늘이 360도로 펼쳐져서 가슴이 탁 트인다. 아래는 온통 아파트 숲뿐이지만.  꼭대기 층에다 옥상 마당의 존재가 이 집의 가치를 높여준다. 특히 층간소음에서 자유롭게 사는 점이 제일 부럽다. 위층 올빼미 때문에 10년 넘게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은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유난히 심한 이를 알고 있다. 전투기 소리만 들어도 두려움에 떤다. 얼마 전에는 헬리콥터 여러 대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걸 보고 전쟁이 날까 봐 방독면을 구입하고 대피처를 검색했다고 한다. 어릴 때 어떤 트라우마가..

사진속일상 2024.09.30

씨엠립(4) - 앙코르와트, 쁘레아칸, 네악뽀안, 따솜, 이스트메본, 쁘레룹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와트 입구까지 가서 휴대폰 불빛을 의지해 일출을 보는 장소인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과 주변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경관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이 적은 호젓한 곳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에 부대끼며 굳이 연못에 비치는 반영 앞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출을 보고 그저께에 이어 다시 앙코르 와트에 입장했다. 일출을 본 사람들은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 앞에서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양인은 혼자나 둘씩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패키지로 오는 경우는 드문드문 눈에 띈..

사진속일상 2024.01.24

어떤 도둑질 / 윤정옥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껏 나는 칠순 노모의 김치를 먹고 있다 음식 비법을 전수하기 싫은 이름 난 식당 주인처럼 도대체 내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고 해치워버린다 김장해놨으니 가져가거라 돌멩이 맞을 소리지만 왜 그랬냐고 날 부르지 그랬냐고 하면서도 한 시간 후에는 소요산쯤을 지나고 있다 차로 한 시간 반 거리 철대문을 요란스럽게 열고 들어가 고구마, 마늘, 김치, 만두, 가래떡을 한 아름 들고 나온다 도둑질을 당당하게 하고 나온다 아마 나는 엄마의 인생에서 알토란 같은 시간을 도둑질했을 것이다 단번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서너 번의 분절로 허리 펴 선 자리, 발끝마저 점점 흐릿해지는 엄마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껏 바윗덩이를 지고 무심한 산을 올랐듯 오르는 것밖에는 알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

시읽는기쁨 2021.07.17

외국 사는 자식이 효자다

올해는 손주 돌보는 일에 매이게 되었다. 제 어미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을 1년간 받게 되어 손주를 유치원에 보내고 맞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버스에 태워 보냈다가 오후 3시에 받으면 저녁 시간까지 맡아봐야 한다. 부부가 함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손주 돌보미는 우리 나이 또래가 대부분 겪는 일이다. 자식이 맞벌이를 하면 제일 크게 부딪히는 문제가 육아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조부모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잊을 만하면 TV에서 보모의 아동 학대 영상을 보여주니 도무지 남에게 맡길 수 없다 한다. 자식의 요청에 거절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는가. 겉으로는 손주가 이뻐서 괜찮다지만 과연 속까지 그럴까. 며칠 전 지인이 하는 불평을 들었다. 딸이 쌍둥이를 뱄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

길위의단상 2019.04.19

대물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쩌다 아버지 옆에서 잠자게 되면 숨소리조차 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워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셨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뒤에 들었다. 아버지가 길을 가시면 미리 피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면장으로 계실 때 지역 국회의원이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왜 마중 나가냐며 아버지는 면장실에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꼿꼿하신 분이었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바가 한..

참살이의꿈 2017.07.05

금성인의 지극함

첫째 손주는 여자지만, 둘째 손주는 남자다. 커가는 모습을 보면 둘의 차이가 엄청나다. 아예 다른 종족이 아닌가 싶다. 여자와 남자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져 나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뇌 구조 자체가 다르다. 둘째는 걸음마를 할 때부터 길가의 돌멩이와 막대기에 관심을 보였다.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잡고 던지고 하는 게 일이었다. 지금은 나뭇가지만 잡으면 칼싸움을 하려고 덤벼든다. 돌멩이도 원시 시대의 무기였다. 수컷의 피에 흐르는 사냥과 전투 유전자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내아이가 왜 돌멩이와 막대기에 본능적인 호기심을 가지는지 이제야 알겠다. 반면에 첫째는 이런 데는 아예 흥미가 없다. 성인이 된 여자와 남자가 부부가 되어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게 얼마나 어..

길위의단상 2016.12.23

10월 23일

어제 10월 23일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큰일의 결말 두 개가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났다. 묘하게도 시간까지 겹치면서 더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일 모두 연초에 시작하여 똑같은 십 개월을 필요로 하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끝을 맺었다. 우연이라면 참 묘한 우연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행히 둘 다 결과가 좋았다. 하나는 축하할 일이건만 다른 쪽이 걸려 밝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야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동안의 드러내지 못한 고뇌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특히 아내가 더했다. 불면증이 심해져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한 해를 돌아보며 파란만장했다는 말을 쓰는데 그동안은 실감할 수 없었다. 그만큼 편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안 그렇다...

길위의단상 2014.10.24

부모 된 죄

짐승과 달리 인간 부모는 평생을 자식 지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혼시키고 내보내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자식'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자식 나이 스물을 넘기면 어엿한 성인이 되었건만 부모 덕 보지 않고 독립하려는 젊은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뼈 빠지게 가르치고, 결혼시키고, 집 장만해 주고, 손주 봐주고, 허리가 꼬부랑이 되도록 뒷바라지하다가 재수 없으면 자식 사업 자금 대주느라 노후 자산까지 말아먹기도 한다. 드물지 않게 보는 경우다. 자식은 결혼시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도리어 시작이다. 이는 시대적 상황 외에 부모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자식을 그렇게 키워 왔으니 말이다. 손주 봐주고 자식 보살피는 일에서 노년의 즐거움을 찾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특별하게 그런 사..

길위의단상 2014.07.07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한국 어머니들의 과도한 자식 집착에 대해 사회학자가 분석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제일 큰 원인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껄끄러우니까 남는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남편은 바깥 일이고, 아내는 자식이다. 핑계는 가족을 위한다지만 실은 배우자에게서 생긴 공허함을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집에는 냉기류가 흐르는데 자식은 행복해지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다. 아무리 가지를 치료하고 정성을 쏟아도 뿌리가 병들어 있으면 허사가 된다. 건강한 가정의 바탕에는 성숙한 개인이 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건강한 가정을 바라기 어렵다. 독립적이지 못한..

참살이의꿈 2013.12.21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

교직에 있으면서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결손가정이나 방임 때문에 생기는 문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심각했다. 자식을 잘 키우려다 오히려 반편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독립심을 길러주고 놓아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끝까지 보살피려 한다. 내 자식은 특별하게 키우려는 엄마의 욕심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건 대견하지만, 엄마에게서 떠나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보다도 아들한테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엄마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여럿 보았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더라도 온실 속에서 길러진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결혼한 뒤에도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하려 한다. 안쓰럽다고 그걸 다 받아주는 얼빠진..

참살이의꿈 2013.08.30

축생의 시대

제 자신과 제 새끼만 아는 시대다. 인간이 축생(畜生)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축생만도 못하다. 짐승은 제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내보낼 줄 안다. 그러나 인간 축생은 죽을 때까지 품안에 가두려 한다. IMF 쇼크 이후 한국 사회가 변했다고 한다. 위기가 결국 생존에만 집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 먹을 양식은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에서 내가 다 챙겨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깊이가 없는 민족은 고통을 배움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파이 조각만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새끼 사랑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가정이라는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제 새끼만 쳐다보느라 눈이 멀어 버린다면 배 부른 돼지에 다름 아니다...

참살이의꿈 2013.08.03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자식을 다 출가시키고 둘만 남은 지도 1년이 돼간다. 전보다 삶이 단출하게 변했다. 각자 가정을 꾸려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니 자식에 대한 염려는 많이 줄어들었다. 집이 썰렁하게 느껴지던 단계도 지나고 이젠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산다. 두 노인만 있으니 어떤 날은 종일 절간에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주말에 가끔 찾아온다. 와서 자고 갈 때도 있다. 두 식구에서 네 식구로 불어나면 집안이 소란해진다. 처음에는 활기가 있고 좋지만, 나중에는 부산스러워서 피곤하다. 속마음으로는 인제 그만 돌아갔으면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알아차릴 듯 말 듯하게 눈치만 줄 뿐이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도 남녀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우리 부부의 경우를 보면 특히 그렇다. 아내는 오매불..

길위의단상 2012.10.21

홀가분하다

석 달 간격으로 두 딸을 시집보냈다. 연초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올 한 해는 자식 결혼시키느라 바빴다. 힘들었어도 경사를 두 건이나 연이어 치렀으니 복 받았다 할 수 있다. 나이가 찬 자식을 아직 데리고 있는 사람들은 일찍 혼사를 끝낸 우리를 부러워한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둘 다 연애로 자기 좋아하는 짝을 찾아갔으니 서운한 게 덜 한 편이다. 잠시라도 떨어질세라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도리어 질투가 날 정도다. 그래도 엄마 마음은 다른 것 같다. 아내는 상당 기간 잠 못 들고 슬퍼하고 있다. 딸의 빈방에서 나올 때 눈가가 빨개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겠지, 앞으로 아이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면 아내의 우울도 잦아들 것이다. 둘째가 신혼여행 뒤 집에 찾아와 인사하..

길위의단상 2011.12.10

소용없다

박목월 시인의 부인은 생전에 자식들이 속상하게 할 때마다 부채에 써놓은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부채에는 '소용없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부인은 자식들이 말썽을 부릴 때면 부채를 펴서 자식들에게 보이고 스스로에게도 자경(自警)의 의미로 삼았던 것이다. 그분의 아들인 박동규 선생의 회고로는 어머니가 부채를 펴 보이면 조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을 어찌할까? 그러나 무엇이건 지나치면 병이 된다. 특히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기 쉽다. 아이가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 탯줄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내는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부터 잠을 이루지 못한다. 병원 약이 아니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자식이 ..

참살이의꿈 2011.11.03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늦은 때는 없단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늦은 때는 없단다. 더구나 이십대란 무엇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냐. 나는 네가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늘 무언가를 찾고 도전하는 정신이 없다면 그것은 젊음이 아니다. 모든 가능성이 네 앞에 열려 있다. 어떤 때는 1%의 확률에 배팅하는 모험도 필요할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열정을 잃는 일이다. 일은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못 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하든지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하며 살길 바란다. 그 뒤의 결과는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딸아! 부모의 눈치도, 세상의 눈치도 보지 마라. 많이 고민하고 시야를 넓게 가져..

길위의단상 2009.04.09

충성

요사이 할 일 없이 집에서 지내면서 출근하는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그러나 모성애라 부를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과 보살핌은 남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지나치다 싶은 면도 있다. 숫컷들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지극함이다. 직장에 다니는 두 아이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 아내는 밥과 도시락을 차려 놓고 대기한다. 본인이 아무리 아파도 자식들 밥 준비만은 거르지 않는다. 어쩌다 제대로 못 먹고 가게 되면 그렇게 속 상해 할 수가 없다. 또 날씨에 따라 옷 챙기는 것도 신경 쓰고,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미리 눌러준다. 그리고 버스를 잘 탔는지 베란다에 나가 확인까지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두 아이를 그렇게 보내야 새벽 일과가 끝..

길위의단상 2009.02.16

무릎을 잊어버린다 / 엄원태

한동안 무릎은 시큰거리고 아파서 내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아침산책 몇 달 만에 아프지 않게 되자 무릎은 쉽게 잊혀졌다.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다. 때로는 잘 삐치시고 짜증까지 내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우리가 아프지 않은 탓일게다. 아직도 삼시 세 끼를 꼭 챙겨드려야 마지 못한 듯 드신다. 어쩌다 외출이 길어져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그때까지 밥을 굶으시며 아주 시위를 하신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아픈 무릎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안 깨물어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아우는 마흔 넘도록 대척지인 아르헨티나로 멕시코로 홀로 떠돌아다닌다. 아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각별하시다.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 - 무릎을 잊어버린다 / 엄원태 누구에게난 아픈 무릎..

시읽는기쁨 2009.02.09

여서(女書)를 받고 / 조운

너도 밤마다 꿈에 나를 본다 하니 오고 가는 길에 만날 법도 하건마는 둘이 다 바쁜 마음에 서로 몰라보는가 바람아 부지 마라 눈보라치지 마라 어여쁜 우리 딸의 어리고 고운 꿈이 날 찾아 이 밤을 타고 이백 리를 온단다 - 조운 / 여서(女書)를 받고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있는 딸로부터 아버지는 편지를 받는다. 아마 그 편지에는 밤마다 아버지의 꿈만 꾼다는 딸의 애절한 사연이 젹혀 있었을 것이다. 자식의 편지를 받고 그리움과 안타까움에서러운 부정(父情)이 이 시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딸이 찾아오는 꿈자리를 방해하지 말라고 '바람아 부지 마라'고 하며 애원을 할까. 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금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더 말할 나위가..

시읽는기쁨 200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