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무릎을 잊어버린다 / 엄원태

샌. 2009. 2. 9. 08:39

한동안 무릎은 시큰거리고 아파서 내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아침산책 몇 달 만에 아프지 않게 되자 무릎은 쉽게 잊혀졌다.

어머니는 모시고 사는 우리 부부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하시다. 때로는 잘 삐치시고 짜증까지 내신다. 어머니 보시기에, 우리가 아프지 않은 탓일게다. 아직도 삼시 세 끼를 꼭 챙겨드려야 마지 못한 듯 드신다. 어쩌다 외출이 길어져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그때까지 밥을 굶으시며 아주 시위를 하신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에게 아픈 무릎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안 깨물어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아우는 마흔 넘도록 대척지인 아르헨티나로 멕시코로 홀로 떠돌아다닌다. 아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각별하시다.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

- 무릎을 잊어버린다 / 엄원태

누구에게난 아픈 무릎이 한 가지씩은 있으리라. 그것은 자식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다. 가족은 질긴 혈연의 끈으로 매여 있지만, 그래서 더욱 아픔을 주는 존재가 된다.

관심과 사랑은 아픔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로간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무릎을 잊어버리는 것이 통증이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 한 쉬운 일은 아니다. 내 아픈 무릎에서도 드디어 파열음이 났다.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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