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 고재종

샌. 2009. 2. 4. 18:51

그 가지들이 가는 것이거나 굵은 것이거나 아예 실가지거나 우듬지거나 모두 다 서로를 훼방놓는 법이 없이 제 숨결 닿는 만큼의 허공을 끌어안고 바르르 떨거나 사운거리거나 건들거리거나 휙휙 후리거나 모두 다 제 깜냥껏 한세상을 흔들거리는데 그 모든 것이 웬만해선 흔들림이 없는 한 집의 주춧기둥 같은 둥치에서 뻗어나간 게 새삼 신기한 일이다.

더더욱 그 실가지 하나에 앉은 조막만한 새 한 마리의 무게가 둥치를 타고 내려가 깜깜한 땅속의 그중 깊이 뻗은 실뿌리에까지 거기 흙살에까지 미쳐 그 무게를 견딜 힘을 다시 우듬지에까지 올려보내는 땅심의 배려로 산 가지는 어느 여린 것 하나라도 어떤 댑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당참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 우린 너무 감동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 잦은 바람 속의 겨울 감나무를 보면 / 고재종

엉뚱한지 모르지만 이 시를 읽으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이 시에서는 성서적 개념이 또 하나 보인다. 온 나무가 작은 새 한 마리의 무게를 잊지 않고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은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씀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작거나 굵거나 모두 한 우주생명에서 갈라져나온 가지들이다. 그 생명나무를 꼭 종교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는 의미나 기독교적 의미나 대동소이하다고생각된다.

우리가 모여서 하나를 이루고 있는 큰 생명을 상상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현재 나의 지력으로는알 수 없다. 다만 어떤 조화와 신비의 세계라는 것을 어슴프레하게 느낄 뿐이다. 그 느낌은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동과 감사, 내적 신뢰와 평화로 연결된다.그것이 곧 종교심이 아닐까.우주에 대한 감동이 없는 종교는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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