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3

아버지의 팔자 / 김나영

'아들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 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 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만 원이 넘는 돈을 삼 일 만에 펑펑 다 써 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

시읽는기쁨 2023.03.27

논어[348]

자유가 말했다. "상례는 슬퍼하면 그만이야." 子游曰 喪致乎哀而止 - 子張 10 장례식장에 가면 통로를 따라 조화가 즐비하다. 조화의 수는 그 집안의 권세에 비례한다. 무엇을 자랑하려는 것일까? 조화를 보낸 사람의 이름과 직책을 커다랗게 게시하는 꿍꿍이가 뻔하다. "상례는 슬퍼하면 그만이야." 상례의 기본은 진정으로 슬퍼함이다. 거기서 그쳐야 한다.

삶의나침반 2019.08.07

조장 / 김선태

티베트 드넓은 평원에 가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포식한 독수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의식은 끝났다, 그렇게 여인은 허, 공에 묻혔다 독수리의 몸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영혼은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독수리의 날개를 빌어 타고 처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게다. 장례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침울하지 않았다, 평온했다 대퇴골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스님의 표정도 경건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생전 못된 놈의 시신은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다고 ..

시읽는기쁨 2009.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