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 28

논어[110]

선생님이 제나라에서 '소(韶)의 곡'을 듣는 동안 석 달 동안 고기 맛조차 잊고 말씀하시다. "나는 모르는 사이에 이처럼 즐거움에 취하고 말았다." 子在齊 聞韶 三月 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 至於斯也 - 述而 12 소(韶)는 순 임금 시대의 음악이다. 얼마나 즐거움에 취했으면 석 달 동안 고기 맛조차 잊을 정도가 되었을까. 하루 이틀 정도야 입맛을 잃을 수 있지만 석 달이라니, 이를 보면 공자는 대단한 예술가이자 로맨티스트였던 것 샅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리타분한 유교적 스승상은 실제 공자와 맞지 않는 이미지다. 감성적이고 자유분방한 공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건 유쾌한 일이다.

삶의나침반 2014.10.31

북한동 향나무

북한산 보리사 앞에 있는 향나무다. 주 등산로가 바로 옆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나무다. 수령은 350년이고, 높이는 7m, 줄기 둘레는 2.3m다. 다른 향나무에 비해 키가 높이 자란 게 특징이다. 지금은 정비되어서 음식촌이 사라졌지만, 전에는 이곳에 마을도 있었던 것 같다. 지명은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이다. 나무에 상처를 입히면 마을이 화를 입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젠 덩그마니 나무만 남았다.

천년의나무 2014.10.30

북한산 늦은 단풍

북한산 단풍 절정 시기가 10월 28일이라는 기상청 발표를 믿고 북한산 부왕사지를 찾았으나 이미 시들해지고 난 뒤였다. 산의 고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중간 지대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대체로 발표 1주일 전쯤이 단풍 구경하기에 적기가 아닌가 싶다. 간 길에 의상능선의 일부를 걸었다. 날카로운 암봉을 지나는 맛이 재미있었다. 의상봉을 넘어 하산하는 길은 너무 험하다고 해서 국녕사를 지나는 길로 내려왔다. 젊었을 때 같았으면 모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이다. 북한산은 평일인데도 등산객이 너무 많았다. 북한산 탐방지원센터 입구에는 울긋불긋 사람의 줄이 이어졌다. 산 속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좀 조용히 말하면 좋으련만, 산을 전세낸 듯한 태..

사진속일상 2014.10.30

북학의

교과서에서 이름만 배우고 읽어 보지 못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박제가(朴齊家)가 쓴 도 그런 책 중 한 권이다. 실학을 대표하는 책이라고 고등학생일 때 시험용으로 열심히 암기했다.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걸 보니 학교 공부가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지금의 시각으로 판단하지 말자고 미리 다짐한다. 는 박제가가 1778년에 첫 번째 중국 여행에서 돌아와 저술한 책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읽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대부분의 식자들이 주자학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 박제가는 폐쇄적 사회와 시스템의 개혁을 외쳤다. 과격하며 어쩌면 불손하기까지 한 사상가였다. 그의 말에 동조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제가의 주장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떠오르게..

읽고본느낌 2014.10.29

용마산 조망

푸르른 가을 하늘 열린 날, 아차산과 용마산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용마산 정상에서 대원외고 방향 능선길을 따라 긴고랑으로 내려왔다. 이 능선은 서울을 바라보는 조망이 좋았다. 확 터진 풍경으로는 이만한 데가 없다.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은 내가 10여 년을 산 동네다. 여기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이곳은 아직도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촌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재개발 열풍에서 비껴갔다. 옛날 단독주택이 도시형 다가구나 빌라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서로 키자랑을 하는 시대에 이런 소형 주택촌이 남아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골목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도 이런 데다. 아차와 용마는 낮은 산이지만 등산 코스가 아기자기하게 나 있어 가볍게 걷기에는 최고다. 그리고 아직은 인공적인 냄새가 덜 난다...

사진속일상 2014.10.28

논어[109]

선생님 말씀하시다. "돈벌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면 나는 마부 같은 벼슬이라도 하겠지만, 할 수 없을 바에야 나 하고 싶은 대로나 해 보겠다."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述而 11 부(富)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엉거주춤하다. 부정도 긍정도 아니다. 재물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장자학파와는 완연히 구별된다. 여기서도 돈벌이를 해서 돈을 벌 것 같으면 천한 직업이라도 갖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으니 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번역은 '돈벌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이지만, '富而可求也'가 주는 느낌은 '돈을 버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에 가깝다. 성공 확률이 낮으니 딴 일을 하겠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이상하다. 공자가 단순히 확률을 따져 일을 추진하는 분이 아..

삶의나침반 2014.10.25

10월 23일

어제 10월 23일은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큰일의 결말 두 개가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났다. 묘하게도 시간까지 겹치면서 더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일 모두 연초에 시작하여 똑같은 십 개월을 필요로 하면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끝을 맺었다. 우연이라면 참 묘한 우연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행히 둘 다 결과가 좋았다. 하나는 축하할 일이건만 다른 쪽이 걸려 밝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야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동안의 드러내지 못한 고뇌를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특히 아내가 더했다. 불면증이 심해져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이어졌다. 한 해를 돌아보며 파란만장했다는 말을 쓰는데 그동안은 실감할 수 없었다. 그만큼 편하게 살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는 안 그렇다...

길위의단상 2014.10.24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이런 류의 제목에 끌리는데 책을 읽어보니 정작 지은이는 엄청나게 바쁜 사람이다.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기웃거린다고 별명이 오지래퍼(Ozirapper)다. "범인(凡人)은 이해 못 할 시를 쓰고, 정부가 부숴버린 제주 바위 옆에 돈 안 되는 도서관을 짓고, 환쟁이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영화판에 참견하고, 만화를 향한 연심(戀心)은 책 한 권이 족히 넘는 그는, 공사다망한 중에도 틈틈이 친구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는, 인생이 '작당'인 한량이다. 평생 멋대로 살아왔으나 잘못 살았던 적 없고, 누구도 설득하려 들지 않는 대신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다." 건축가이자 시인인 함성호 씨의 자기소개다. 역설적인 제목의 은 재주 많은 이 분이 쓴 에세이집이다. 어느 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 스님은 태블릿 PC를 ..

읽고본느낌 2014.10.22

먹은 죄 /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고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 먹은 죄 / 반칠환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 산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느라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야 했던가. 우리는 그걸 먹이사슬이라 부른다. 인간계 안에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몫을 뺏는 게 불가피하다. 어쩌면 자연계보다 더 냉혹하다. 현대의 원죄는 '먹은 죄'가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율법대로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온 군중에..

시읽는기쁨 2014.10.21

바둑 대회

바둑 대회에 출전하는 J 형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기원에 갔다. 재경 대구경북 지역 중고등학교 대항전이었는데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해서 열전을 벌였다. 공식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동문끼리 팀을 이루어 나가는 단체전이기 때문에 개인전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실력이 평준화되어선지 4:3, 아니면 3:2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A 그룹에선 경북고가, B 그룹에선 성광고가 우승했다. 내 모교는 참석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선수들은 50대가 드문드문하고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었다. 요사이는 바둑을 두는 젊은 세대를 보기가 어렵다. 번쩍이는 컴퓨터 게임에 빠지지 바둑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진득하게 한 자리에 눌러앉아 긴 시간 머리를 써야 하니 아이들이 따분하게 ..

사진속일상 2014.10.20

논어[108]

선생님이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써 주면 일할 것이요, 버리면 잠자코 있을 것이니, 그야 나나 너는 그럴 수 있겠지!"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거느리신다면 누구를 데리고 하시겠습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맨주먹으로 범을 두들기고, 배 없이 강물을 건너려 들며, 죽어도 좋다고 날뛰는 사람과는 나는 함께 일할 수가 없다. 하기야 일을 당하면 실패할까 저어하며, 일이 성사되도록 잘 꾸며내는 사람이어야지."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 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謨而成者也 - 述而 10 재미있는 장면이다. 특히 자로의 성격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스승이 안연을 칭찬하는 말에 자로는 군대를 쓰는 일이라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느냐고 묻는다...

삶의나침반 2014.10.19

졸업

EBS 명화극장에서 방송된 영화 '졸업'을 다시 보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1970년대 초반의 대학생이었을 때였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몇 개 장면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영화로 남아 있다. '졸업'으로 인해 더스틴 호프만을 좋아하게 되었고,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스카보로 페어'가 흐르는 가운데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다. 밤늦게 시작된 영화지만 옛날 생각에 잠긴 채 재미있게 보았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지금 보니 세대간의 갈등이라는 측면이 부각되어 보인다. 물질적 풍요를 이룬 미국 중산층의 정신적 공허는 그대로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 세대가 요구하는 현실과 삶의 의미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사랑을 찾아가..

읽고본느낌 2014.10.18

선림원지에 가서 / 이상국

선림(禪林)으로 가는 길은 멀다 미천골 물소리 엄하다고 초입부터 허리 구부리고 선 나무들 따라 마음의 오랜 폐허를 지나면 거기에 정말 선림이 있는지 영덕, 서림만 지나도 벌써 세상은 보이지 않는데 닭 죽지 비틀어 쥐고 양양 장 버스 기다리는 파마머리 촌부들은 선림 쪽에서 나오네 천 년이 가고 다시 남은 세월이 몇 번이나 세상을 뒤엎었음에도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근 농가 몇 채는 아직 면산(面山)하고 용맹정진하는구나 좋다야, 이 아름다운 물감 같은 가을에 어지러운 나라와 마음 하나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소처럼 선림에 눕다 절 이름에 깔려 죽은 말들의 혼인지 꽃이 지천인데 경전이 무거웠던가 중동이 부러진 비석 하나가 불편한 몸으로 햇빛을 가려준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여기까지 오는데 마흔아홉 해가 걸렸구나 ..

시읽는기쁨 2014.10.17

한 장의 사진(19)

1974년에 초등학교에서 한 주, 고등학교에서 세 주동안 교생 실습을 했다. 우리는 다른 대학과 달리 초등학교 실습도 나간 게 특이했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초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지낸 것이었다. 고작 엿새만 있었는데도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굳이 초등학교 경험을 시킨 건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무엇인지 느껴보라는 의미 같았다. 사대생 전부가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부속학교로만 실습을 나갔으니 한 학급에 열대여섯 명씩 배정되었다. 그러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교육 현장 참관이라는 말이 옳았다. 실제 수업도 몇 번 하지 않았다. 담임을 대신하는 조종례도 돌아가며 하다 보니 고작 한두 번이었다. 얼렁뚱땅 보내도 아무 지장 없었다. 솔직히 교생 실습이라기보다는 놀러 다닌 기분이었다. 실습을 하..

길위의단상 2014.10.16

야탑에서 잠실까지 걷다

야탑에 있는 치과에 들른 길에 탄천을 따라 서울 잠실까지 걸었다.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태풍 '봉퐁'의 영향으로 바람이 셌지만 더없이 맑고 상쾌한 가을날이었다. 이런 날은 어디든 무작정 걷고 싶다. 또한 어떤 날은 고행처럼 걷고 싶기도 하다. 넓은 세상에서 혼자가 되어 길이 끊어지는 데까지 걸어가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지쳐서 비틀거리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한 모습으로 걷고 싶은 날이 있다. 야탑에서부터 끝까지, 가는 길 내내 맞바람이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 행렬은 쌩쌩 가속이 붙었다. 바람이 더 세게 불었어도 좋았다. 구름은 빠르게 제 모양을 바꾸었다. 원래는 강변역까지 걸을 예정이었지만 시멘트 길을 계속 걸어선지 발이 아파 중도에서 접었다. 목표 지점 6km 전이었다. 종착지가 잠실운동장 ..

사진속일상 2014.10.14

논어[107]

선생님은 상제의 곁에서 식사할 적에는 배부르도록 드시지 않았다. 子 食於有喪者之側 未嘗飽也 선생님이 곡을 한 그날은 노래도 부르시지 않았다. 子 於是日 哭則不歌 - 述而 9 인간으로서 당연한 예의와 배려다. 공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상례보다 주목되는 건 공자가 노래를 즐겨했다는 사실이다. 곡을 한 그날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걸 강조하는 것은 평소에 자주 노래를 불렀다는 뜻이겠다. 공자는 인간 심성을 순화시키는 시와 노래의 교육 기능을 십분 활용한 것 같다. 그를 통해 본인도 인생을 즐겼을 것이다. 예술적 재능은 위대한 스승이 되는 필요 조건인가 보다.

삶의나침반 2014.10.13

우음도 석양

안산에서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고 우음도에 들렀다. 광활한 간척지에 펼쳐진 원시의 풍경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제2서해안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새로운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옛날 분위기는 사라졌다. 우선 고속도로 소음이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같대밭 너머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가끔 편대를 이루며 새 무리가 지나갔다. 쓸쓸할 때 찾아갈 장소가 하나 줄어들었다.

사진속일상 2014.10.12

따스한 고독

거의 칩거 상태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이 한 달에 두어 번밖에 안 된다. 고립도 습관이 되니 편하다. 뭔가 부족을 느껴야 모임에도 나가고 할 텐데 지금에 만족하고 있으니 그냥 내 식대로 살고 있다. 삶의 길에 정답은 없다. 나를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남에게 평가를 받고 싶지 않듯, 나도 남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열심히 움직이면 되고, 나 같은 사람은 정적인 삶을 살면 된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 건 아니다. 바둑 모임도 즐겁고, 가끔 동기들끼리 당구를 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대화를 하게 되면 달라진다. 그들과 나 사이에 높은 장벽을 느낀다. 소통을 하려고 애쓴다고 소통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 ..

참살이의꿈 2014.10.11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가수 김창완 씨가 동시 작가가 되었다. 전부터 예쁜 노래 가사를 쓴 재주 많은 분이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발표한 동시를 보니 그분의 얼굴 표정처럼 동심이 해맑다. 나이는 벌써 환갑이 되신 분이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아니면 이런 할어버지 불알은 보이지 않는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곱다. 시가 무척 재미있어서 깔깔깔 웃었다. 김창완 씨가 어느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네 살 무렵에 뛰어놀다가 넘어졌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들어갔어요. 바늘이 부러진 채 박혀버렸지요. 막 울고불고 난리치니까 할아버지가 망치로 손바닥을 막 때렸..

시읽는기쁨 2014.10.10

품인록

중국에서 고전 대중화의 길을 개척하고 TV 강의를 통해 학술 스타로 각광받고 있다는 이중톈[易中天] 교수가 쓴 책이다. '중국 역사를 뒤흔든 5인의 독불장군'이라는 부제로 항우, 조조, 무측천, 해서, 옹정제의 인물 품평을 다루었다. 인물 중심이라는 점에서 일반 역사서와는 좀 다르다. 그래서 제목이 '품인록(品人錄)'이다. 중국에서 인물 품평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통인데 위진 시대에는 하나의 미덕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비평가들은 시적 감수성으로 인물을 평했다. "솔 아래 부는 바람처럼 소슬하다", "아침놀이 떠오르는 것처럼 당당하다", "봄날 버들처럼 산뜻하다" 등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 인물 비평이나 감상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면서, 그것이 이 책을 쓴 동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

읽고본느낌 2014.10.09

낙동구절초

화담숲에서 본 낙동구절초다. 낙동강 유역에서 발견된 종인데 구절초보다는 꽃이 작다. 키도 상당히 작은 편이다. 그러나 밖에서 만난다면 다른 구절초와 구별해 내기 어려울 것 같다. 지역 이름이 붙은 구절초만 해도 한라구절초, 포천구절초, 서울구절초 등 여러 가지다. 20종이 넘는 구절초를 제대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꽃이 아닌 잎을 봐야 하는데, 구절초와 쑥부쟁이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주제에 그건 언감생심이다.

꽃들의향기 2014.10.08

곤지암리조트 화담숲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안에 있는 화담숲은 LG상록재단에서 만든 수목원이다. 약 23만편의 면적에 17개의 다양한 주제정원이 있어, 사계절내내 다양한 식물과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숲을 지나는 산책 코스도 잘 만들어져 있다. '화담(和談)'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이다. 집에서 멀지 않아 아내와 함께 오후에 가볍게 찾아가 보았다. 입장료가 8천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정성들여 잘 가꾸어 놓았고 분위기도 좋았다. 너무 인공적이어서 아쉽지만 자연과 함께 하루를 즐기는 장소로는 괜찮을 듯하다. 우리는 숲속산책길을 걸어 올라가서, 제일 외곽의 힐링숲길 2코스를 돌아 테마원을 구경하며 내려왔다. 거의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길 식물 분재 힐링숲길 2코스에 독바위 전망대가 있었다. 여기서 보면 곤지암 스키장..

사진속일상 2014.10.08

논어[106]

선생님 말씀하시다. "달려들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았고, 애태우지 않으면 튕겨 주지 않았고, 한 귀를 보여 줄 때 셋까지 깨닫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 子曰 不憤不啓 不비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 述而 8 스승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모두 피교육자의 능동적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분할 분'과 '마음을 태울 비'라는 단어가 나타내듯, 앎에 대한 처절한 열망이 있어야 교육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를 보여줄 때 셋을 깨닫지 못하면 다시 되풀이하지 않았다는 것은 피교육자의 자질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공부는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스승은 옆에서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렇게 박자가 맞을 때 교육은 이루어지고..

삶의나침반 2014.10.07

원터골에서 양재까지 걷다

양재에서 저녁 모임이 있는 날, 청계산을 거쳐서 가기로 하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이었다. 그러나 기분은 우울했다. 너무 맑은 날씨가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그 아이를 깨운 지도 몰랐다. 청계산은 휴일이면 등산객으로 북적대는 산이다. 다행히 정오 즈음의 시간이라 사람들의 소란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적을 길을 골라 걸었다. 산길을 걸으면서 안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느껴졌다. 산다는 게 꼭 난해한 고등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고 끙끙 씨름하는 안타까움, 우리는 모두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받아든 수험생인지도 모른다. 누구는 쉽게 풀었다고 큰소리치지만, 오답을 내놓고 ..

사진속일상 2014.10.06

그리니치 천체사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매년 올해의 천체사진을 발표한다. 깊은 우주, 지구와 우주, 태양계, 특별상, 젊은 천체사진가 분야로 나누어져 있다. 잘 찍은 천체사진을 보면 가슴이 뛴다. 사진은 밤하늘을 실제로 바라보는 이상의 감동을 준다. 디지털이 되면서 하늘 촬영 기술도 점점 진보하는 것 같다. 천체사진 찍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걸 짧았던 경험에서 잘 안다. 기상이나 환경 등 조건이 맞는 날이 일 년 중 얼마 안 된다. 거기에 사진가의 열정이 더해져야 한다. 장비만 구비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진 한 장을 위해 쏟아야 할 연구와 노력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올해 사진전의 입상작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보았다. 빙산과 오로라[지구와 우주 부문] Canon 5D, 33mm f/3.2, ISO 1000, 10..

길위의단상 2014.10.04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마음을 확 당기는 시가 있다. 시를 만나는 건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 마음을 끄는 사람이 있듯이 시도 그렇다. 이럴 때는 서로의 주파수가 맞았다고 말한다. 시와 내 정서의 파장이 공명을 일으키는 게 시가 주는 ..

시읽는기쁨 2014.10.03

논어[105]

선생님 말씀하시다. "마른 고기 정도의 예물을 가지고 왔을망정 나는 제자로 삼아 주지 않는 일이 없었다."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 述而 7 가르쳐주는 보답으로 제자에게서 예물을 받는 것은 공자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규모는 달랐겠지만 옛날 우리의 서당도 비슷했다. 훈장도 생활을 해야 했으니 보수를 받는 건 당연했으리라. '마른 고기 정도'라는 표현을 보면 하찮은 예물임에 틀림없는데, 그래도 제자로 삼아주었다고 강조하는 걸 보면 배우려는 사람의 의지를 중요시했다는 뜻이다. 교육 현장에서 첫째는 학인(學人)의 마음자세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가르침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억지로 붙잡고 놓고 사육하듯 가르치는 현재의 학교 교실은 그런 면에서 자격 미달이다.

삶의나침반 2014.10.02

가을 산책

9월의 마지막 날, 광릉수목원과 동구릉으로 아내와 가벼운 나들이를 나갔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햇빛과 공기가 먼저 가을이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전해 주었다. 걷는 게 좋아서 수목원과 동구릉을 한 바퀴 돌았다. 이번에는 광릉수목원에서 전에 가 보지 못했던 동물원까지 다녀왔다. 동구릉은 가족 추억이 쌓인 장소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동구릉에 여러 차례 놀러 왔다. 가을에는 낙엽에서 뒹굴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아내는 눈사람 만들 때 쓴 소도구까지 기억해 냈다. 가을이라는 계절과 이만큼 된 나이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한다. 최근 들어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고민을 끊으라고 충고하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옆에서 ..

사진속일상 201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