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4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한국 어머니들의 과도한 자식 집착에 대해 사회학자가 분석한 걸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제일 큰 원인은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껄끄러우니까 남는 에너지를 자식에게 쏟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남편은 바깥 일이고, 아내는 자식이다. 핑계는 가족을 위한다지만 실은 배우자에게서 생긴 공허함을 잊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이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행복해야 한다. 집에는 냉기류가 흐르는데 자식은 행복해지라고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다. 아무리 가지를 치료하고 정성을 쏟아도 뿌리가 병들어 있으면 허사가 된다. 건강한 가정의 바탕에는 성숙한 개인이 있다.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하면 건강한 가정을 바라기 어렵다. 독립적이지 못한..

참살이의꿈 2013.12.21

코헬렛의 행복

성경 구약의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탄식으로 시작된다. 개신교 성경은 '전도서'라고 하는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로 번역되어 있다. 뒤에 가면 하느님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지만, 도입 부분에 나오는 인생무상에 대한 내용은 성경이 아니라 철학서를 연상시킨다. 기독교에 입문해서 처음 성경을 통독했을 때, 구약에서는 이 '코헬렛'을 제일 좋아했다. '코헬렛'의 저자가 솔로몬이라 배웠지만 성서학자에 따르면 BC 20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거의 700년이나 차이가 난다. 읽다 보면 내용이 매끄럽게 연속되지 않는데 아마 여러 책이 편집된 때문일 것이다. '코헬렛'에는 세상을 보는 유대인의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코헬렛'은 신앙을 강조하기보다 인생을 얼마나..

참살이의꿈 2013.12.02

고마운 천적

윗집 때문에 생활 패턴이 변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던 것이 자정 이후로 늦춰졌고, TV를 보는 시간도 늘었다.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이다. 어린아이 둘이 있는 윗집은 밤 10시가 넘으면 소란이 시작된다. 그 시간이 되어야 가족이 다 모이는 것 같다. 짧으면 한 시간 정도지만, 길면 1시까지도 이어진다. 잠이 들었다가도 쿵쾅대는 소리 때문에 깬다. 다시 잠들기 위해서는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신경이 쓰이면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되고 아무것도 못 한다. 소음에는 마인드 컨트롤도 안 통한다. 그래서 TV를 크게 틀어놓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너무 심할 때는 인터폰으로 연락하지만 자주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다. 말을 해봤자 감정만 상하지 별 효과도 없다. 어린아이 발목에 족쇄를..

참살이의꿈 2013.11.18

고슴도치의 가시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 바싹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그러자 그들은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떨어졌다. 이와 같이 그들은 두 악(惡) 사이를 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했다."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인데, 인간의 외로움과 공허함으로부터 생겨나는 사교의 욕구는 서로를 한 덩어리가 되게 한다. 그러나 너무 가까워지면 불쾌감과 반발심이 일어 다시 떨어진다.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인간 세상에서 지켜야 하는 정중함과 예의다. 일종의 중용인 셈이다. ..

참살이의꿈 2013.11.12

식사의 품위

아내가 날 편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먹는 데에 무던한 것이다. 이제껏 반찬 투정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식사는 간소한 게 좋다는 주의라 군대식대로 늘 1식3찬을 강조한다. 있는 반찬 아무거나 한두 개만 있으면 만족한다. 배고플 때 냉장고를 열고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다. 부엌 출입하는데 남편 아내의 구별이 없다.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어도 다행히 삼식이 새끼라는 핀잔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유별나게 반찬 투정을 하거나 식탐(食貪)을 하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까지는 좋으나, TV의 음식점 소개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말 꼴불견이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먹는 걸 탐하는 걸 보면 측은해 보인다. 사는 게 너무 천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

참살이의꿈 2013.11.04

삶은 단순하고 내 몸은 튼튼하니까

이름난 현사(賢士)의 수사학적 명언보다 평범한 사람의 보통 말에 감동할 때가 있다.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고기잡이하며 살아가는 어부가 자신의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다. "삶은 단순하고 내 몸은 튼튼하니까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여행 프로그램에서였다. 인류가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건 고작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대부분 기간은 농경을 중심으로 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삶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이웃과의 관계는 따스했다. 서로 도우며 상부상조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게 많았을지라도 현대적 의미의 가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풍족해도 과잉 욕망과 상대적 결핍이 빈곤을 생산한다. 필리핀 어부가 한 말 속에 ..

참살이의꿈 2013.10.15

무사시의 작약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에게 이런 일화가 전한다. 무사시가 당시의 최고 검객이었던 세키슈샤이에게 진검승부를 신청했다. 그러나 세키슈샤이는 감기 때문에 도전을 못 받아주는 대신 작약꽃을 칼로 베어 무사시에게 전했다.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무사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나는 세키슈샤이 명인에게 이길 수 없다. 그야말로 내가 본 중에 최고의 검객이다." 그리고는 세키슈샤이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이 정도 되면 검술은 예술의 경지에 든 것이다. 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든가, 꽃이 베어진 단면을 보고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무사시도 고수다. 그는 검을 통해 선(禪)의 경지에 이르렀다. 무사시는 '칼로 싸우지만 마음으로 이긴다'라는 말도..

참살이의꿈 2013.09.24

친구, 동지, 동무

친구 전일하게 다양해진 자본주의와 매고르게 신체화한 상업주의 속에서 부패하고 속물화한 인정투쟁의 일상을 살아 내고 있는 친구들은 그 가차 없고 삭막한 부가가치의 계단을 좇아 스스로를 파편화, 분열화, 원자화시키면서 신분상승의 꿈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친구들은, 오늘도 정실과 연고, 인맥과 학맥, 그리고 지역과 출신의 그늘을 쫓아다니면서 친구로서의 연대와 실천을 공고히 함을 통해 그 오래된 의리를 충량(忠良)하게 지켜 낸다. 스스로의 존재를 자본의 스케일 위에 환원/환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친구들은 물화(物化)의 과정 속에 투신하여 '기계-남자'나 '도구-여자'로 변신, 또 변신하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 속에 모여드는 친구에게는 동지들이 추구하는 대의나 이데올로기마저..

참살이의꿈 2013.09.07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

교직에 있으면서 엄마의 지나친 교육열이 아이를 망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결손가정이나 방임 때문에 생기는 문제보다 이쪽이 훨씬 더 심각했다. 자식을 잘 키우려다 오히려 반편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독립심을 길러주고 놓아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끝까지 보살피려 한다. 내 자식은 특별하게 키우려는 엄마의 욕심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는 건 대견하지만, 엄마에게서 떠나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한다. 딸보다도 아들한테서 이 문제는 심각하다. 엄마한테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경우도 여럿 보았다. 겉모습은 그럴듯하더라도 온실 속에서 길러진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결혼한 뒤에도 모든 걸 부모에게 의지하려 한다. 안쓰럽다고 그걸 다 받아주는 얼빠진..

참살이의꿈 2013.08.30

어떤 꿈을 꿈

꿈과 야망은 다르다. 꿈이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람이라면, 야망은 되어야 하는 욕구다. 꿈이 이타성에 바탕을 둔다면, 야망은 나 중심의 에고에서 출발한다. 꿈꾸는 사람은 평화롭지만, 야망을 가진 사람은 칼처럼 날카롭다. 꿈은 기쁨과 여유를 주지만, 야망은 불안하고 조급하다. 꿈은 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꿈 자체로 행복하다. 킹 목사가 외친 "I have a Dream"이 바로 꿈이다. 어떤 꿈을 꾸느냐에 그 사람됨이 있다. 홍순관 님이 자신의 이력을 꿈 중심으로 소개한 걸 보았다. 독특하고 재미있어 여기에 옮긴다. 1962년 지구에 태어남 1963년 유모차를 타고 깊은 꿈을 꿈 1964년 장난감방에서 하루 종일 놀면서, 노는 꿈을 꿈 1965년 집에 있던 포도나무에 호기심을 보임, 앵두나무에도 호기심을 ..

참살이의꿈 2013.08.21

마십시오

"당신이 다만 세상의 것들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늘에 계신'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이기주의 속에서 혼자 떨어져 살고 있다면 '우리'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매일 아들로 처신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분과 물질적인 성취를 혼동하고 있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뜻을 고통스러울 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약도 없이, 집도 없이, 직장도 미래도 없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는다면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형제에 대한 한을 품고 있다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죄를 계속 지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

참살이의꿈 2013.08.10

축생의 시대

제 자신과 제 새끼만 아는 시대다. 인간이 축생(畜生)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축생만도 못하다. 짐승은 제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내보낼 줄 안다. 그러나 인간 축생은 죽을 때까지 품안에 가두려 한다. IMF 쇼크 이후 한국 사회가 변했다고 한다. 위기가 결국 생존에만 집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 먹을 양식은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에서 내가 다 챙겨주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뀌었다. 깊이가 없는 민족은 고통을 배움의 기회로 삼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파이 조각만 더 많이 차지하려고 다툰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새끼 사랑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가정이라는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제 새끼만 쳐다보느라 눈이 멀어 버린다면 배 부른 돼지에 다름 아니다...

참살이의꿈 2013.08.03

어떤 사마리아 사람

어느 날 예수를 떠보려고 한 율법학자가 찾아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었다. 예수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는지 반문했다. 율법학자가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시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시오." 라고 적혀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는 올바로 말했다고 칭찬하며, 그대로 한다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려고 누가 자신의 이웃인지 물었다. 아마 다시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때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매질하여 반쯤 죽여 놓고 물러갔습니다. 그..

참살이의꿈 2013.07.22

착하게 살자

예전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들었다. 책, 영화, 이야기에도 권선징악 내용이 많았다. 학교에 아이를 맡기면서 선생님에게는 때려서라도 인간이 되게 해 주십시요, 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는 강조하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제일 목표가 된 것이다. 그래야 좋은 상품이 되고 세상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게 미덕이 못 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요사이는 동화에도 착한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착함을 부정하는 건 아니고 진짜 착한 게 뭔지 아이들에게 생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밖에서 만난 낯선 사람의 친절을 경계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 에..

참살이의꿈 2013.07.17

은퇴 피로증

무슨 일이든 2, 3년이 지나면 고비를 맞는 것 같다. 사랑에만 유효기간이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선하고 황홀한 것도 일상이 되어 버리면 무미건조해진다. 인간의 뇌는 늘 새로운 것을 요구한다. 흥분 호르몬 효과는 길어야 3년이다. 은퇴한지 2년이 훌쩍 넘었다. 나의 은퇴 허니문 기간도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짜증이 자꾸 늘어나는 게 그 증상이다.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걷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전만큼 즐겁지가 않다. 나는 여기에 '은퇴 피로증'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이렇게 되니 최근에는 아내와 마찰도 잦다. 서로 사소한 것으로 반응하고 부딪힌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게 이젠 눈에 거슬린다. 아내의 신경도 날카로워지..

참살이의꿈 2013.07.08

정란의 목각

옛날 얘기 하나 해 줄께. 옛날 후한(後漢) 대에 정란(丁蘭)이란 사람이 있었어. 부모를 일찍 여의어 봉양할 수 없는 걸 평생 슬프게 여겼지. 그래서 생각 끝에 나무를 아로새겨 사람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진짜 어머니로 알고 섬기기로 했지. 밤이면 목상한테 가서 정성으로 "어머님 안녕히 주무셔요" 하고, 아침이면 또 "안녕히 주무셨읍니까?" 하고, 어디 갈 일이 있으면 들어가서 "저 어디 갔다 오겠습니다" 해서 허락하는 기색이 보여야 가고, 근처에서 무슨 물건을 빌리러 오면 "저 아무개가 무엇무엇을 빌리러 왔는데 주랍니까?" 하고 품(稟)해서 허락하는 안색이 나타나 뵈야 빌려주었대. 하루는 근처에 사는 장숙(張叔)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와서 정란의 아내 보고 무슨 물건을 좀 빌려달라 했대. 정란의 아내는 ..

참살이의꿈 2013.06.23

일장춘몽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 인생 일장춘몽인데...." 어렸을 때 집에 유성기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동네 할머니들이 찾아들고 나는 태엽을 돌리며 유성기를 틀었다. 할머니들은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노래도 그중의 하나다. 이제는 그 하얗던 할머니들도, 유성기도, 마당의 감나무도 사라지고 없다. 요사이 내 입에서도 무심결에 이 노래가 중얼거려진다. 그러면 옛날의 그 호롱불이 희미하던 방 풍경이 떠오른다. 본 노래보다는 잡음이 더 많았던, 북한 사람의 음성처럼 간드러지던 유성기 소리도 들린다. 인생 일장춘몽인데, 애면글면 헛된 마음을 쓰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에 있나 싶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져 주자..

참살이의꿈 2013.06.11

늙을수록 사람들 속에서

오래전부터 내 꿈은 사람들과 세상에서 벗어나 적막강산에 들어가 사는 것이었다. 모든 욕심 내려놓고 산과 나무와 풀로만 친구하며 살고 싶었다. 사람 소리가 절절히 그리워지도록 철저히 홀로이고 싶었고 외로워지고 싶었다. 나름대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인간에게 너무 부대낀 게 원인이었지만 그것 역시 내 천성이 그러한 탓이었다. 퇴직을 하고 광주로 내려와서는 인간과의 마찰은 거의 사라졌다. 여기가 산골 초막은 아니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강원도 심심산골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침이면 새 소리가 잠을 깨우고, 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진동한다. 창문을 열면 맑은 공기에 풋풋한 시골 냄새가 풍긴다. 종일 있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않고 지나는 날이 많다. 그러다 보니 적막강산에 대한 꿈도 많이 시들해졌다. 굳이 파라다..

참살이의꿈 2013.05.26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참살이의꿈 2013.05.10

임류의 자족

따뜻한 봄날에 백살이 다 된 임류라는 노인이 겨울에 입던 갖옷을 그대로 걸치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이삭을 밭이랑에서 주우며 노래를 부르다 걸어가다 하였다. 이것을 위나라로 가다가 벌판을 바라보던 공자가 보고는 뒤따라 오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노인은 말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가서 말을 해 보겠느냐?" 말 잘 하는 자공이 자청하여 밭 언덕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가서 측은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렇게 이삭을 주우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전혀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임류는 들은 척도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 또한 노인이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내게 후회..

참살이의꿈 2013.04.29

사람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 "돈만 있으면 일 안 하고 놀 텐데." 농담하듯 흔히 내뱉는 이런 말들이 빈말이라는 건 퇴직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아무래도 현역에서 떠난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고민이 마땅한 일거리에 관한 것이다.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여전히 일을 찾는다. 여기서 일이란 어딘가에 소속되고 규칙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면 사람들은 일을 안 할까? 그래도 대부분은 규칙적인 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역시 여유가 생긴다면 일없는 공허를 견디지 못 할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 일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는 더 어렵다. 노는..

참살이의꿈 2013.04.22

나는 누구인가?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가 장발장의 "나는 누구인가?"(Who am I?)라는 독백이다. 그는 자베르 경감을 피해 신분 세탁을 하고 시장이 되어 살아간다. 그러다가 다른 데서 장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진짜 장발장이라고 고백하면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모든 것을 잃는다. 숨기면 시장직을 유지하며 잘 살 수는 있으나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희생된다. 양심의 갈등으로 번민할 때 그가 스스로 묻는 말이 이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는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자아 인식에 눈뜰 때 던지는 질문이다. 사춘기 열병의 원인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 때문이다. 평생을 두고 고뇌해야 할 화두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으로 주..

참살이의꿈 2013.04.09

희망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다. 어둠의 장막이 내리기 시작하자 아키바는 헛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려 그는 하는 수 없이 잠을 자야만 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그의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터벅터벅 출발했다. 어떤 마을 근처에 다다랐는데,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밤 도둑이 습격하여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램프가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다. 또 개가 살아 있었더..

참살이의꿈 2013.04.03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

서울 성동구에 응봉산이 있다. 봄이면 온통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산이다. 산 위에서 노란 물감을 부은 듯 개나리가 만개하면 장관이다. 응봉산에는 개나리만 산다. 저절로 그리되었을 리는 없고, 인위적으로 가꾼 탓이다. 색다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자꾸 보면 뭔가 어색하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이 어울려 자라고 동물이 뛰놀아야 숲이다. '늑대가 없는 숲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숲에는 토끼도 살지만 늑대도 산다. 그래야 숲이다.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는다. 인간의 기준으로 호불호가 엇갈리고, 어떤 것은 배척하려 한다. 늑대는 인간에게 득보다는 실이 많은 동물이다. 밤에는 인가에 내려와 가축도 죽인다. 차라리 늑대가 없었으면 하고 바랄 수 있다. 그러나 늑대가 사라지면..

참살이의꿈 2013.03.20

멘토와 힐링의 시대

전에 현직에 있었을 때 신임 교사의 멘토가 되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거절했더니 그냥 형식상 보고만 하면 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경력 교사가 신임 교사와 멘토-멘티 관계를 맺음으로써 학교 생활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라는 발상 같았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굳이 멘토라는 말을 써가며 드러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던 게 사실이다. 멘토와 힐링이 유행인 시대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선배로서의 스승이 필요하고, 상처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어느 시대인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요사이 들어 멘토와 힐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멘토와 힐링의 대상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아프고 방황하고 있다는 증좌인지 모른다. 제대..

참살이의꿈 2013.03.14

용서할 수 없는 습관에서 떠나라

1년 가까이 목욕탕엘 안 가고 있다. 귀 안에 있는 염증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이비인후과를 들락거렸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낫는 것 같다가도 이내 재발한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아주 상극이다. 그래서 병원 치료보다는 내가 고쳐보자, 하고 목욕탕 출입을 끊었다. 병원에서 쓰는 적외선 온열기도 샀다. 집에서 샤워도 드물게 하지만, 하고 나면 적외선으로 귀를 말린다. 덕분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목욕탕에 가질 않으니 때를 밀 일이 없다. 처음에는 몸에 뭐가 기어다니는듯 스물거렸으나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도리어 때를 미는 게 이상해 보인다. 이태리 타올을 사용하는 게 기분은 개운하지만 피부에는 좋을 것 같지 않다. 도살장의 털 뽑힌 돼지처럼 때밀이 앞에 누워 있지 않아도 되니 좋은 점이 더 많다. 반대로 ..

참살이의꿈 2013.02.18

경쟁에서 벗어나기

이 세상을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경쟁이라는 늪으로부터 한 발을 뺀다면 탐욕으로 작동되는 이 세상의 시스템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까? 경쟁에 관한 강수돌 님의 글을 요약하다. ----------------------------------------------------- 경쟁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다. 여러가지 폐해가 있지만 발전을 위해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쟁 상황에 빠지면 결코 행복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면, 경쟁의 필연성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진 결과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

참살이의꿈 2013.02.06

교육과 경쟁

- 학교 다니면서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체육시간, 특히 100m 달리기 할 때요. 그 외에는 들은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영어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죠? 궁금하네요." - 시험(test)을 쳐서 성적(grade)을 매겨 등수(ranking)를 내어 경쟁의 우위를 선별하지요. 핀란드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시험은 치는데 성적은 매기지 않습니다. 등수라고 하셨나요? 등수가 뭔가요?" - 네? 등수 모르세요? 시험 성적에 따라 1등, 2등, 3등, 꼴찌를 가리는 것 말입니다. "학교가 시험을 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등수는 왜 가리나요? 시험을 치는 이유는 학생이 해당 과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참살이의꿈 2013.01.27

감탄과 감동

감탄;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함, 감동;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임. 감탄과 감동은 사전적으로 비슷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는데 차이가 있다. 깊이 느끼는 게 감탄이라면 더 나아가 마음마저 움직이는 게 감동이다. 감탄은 감탄사가 나오지만, 감동은 아무 소리가 없다. 예를 들면,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감탄한다. 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대규모 블록버스터보다는 사소한 일상을 다룬 저예산 영화에서 오히려 감동을 할 때가 더 많다. 멋지고 웅장한 풍경 앞에서는 감탄을 한다. 반면에 산길을 걷다가 발견한 작은 꽃 하나에는 감동을 받는다. 물론 이 둘이 꼭 구분되는 건 아니다. 감탄과 감동은 뒤섞여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

참살이의꿈 2013.01.20

개구리 세 마리

필리핀 민중교육의 역사와 내용을 다룬 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이야기를 만났다. 개구리 세 마리가 나오는 이 우화는 '쌍방향의 상호작용 이야기'로 민중교육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 및 타인과의 관계, 깨달음에 대해서 숙고하게 하는 내용이다. '개구리 세 마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우물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와 같다. 각자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게 전부라 믿는다. 누가 옳을까? 세 마리 개구리는 결국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용기로 우물 밖으로 나온다. 그들은 좁은 고정관념을 벗어났다. 민중교육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신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볼 수 있도록 하고, 개인 또는 집단의 패러다임 전환을 돕는 일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람..

참살이의꿈 201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