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하는 철탑 때문에 한 노인이 분신해서 목숨을 끊었다. 경남 밀양에 살았던 74세의 이치우 할아버지로 지난 1월 16일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력공사는 부산 기장에 있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창녕에 있는 변전소까지 90km 구간에 765kV 송전선로를 깔기 위해 161개의 송전탑을 세우기로 한다. 송전선이 논밭 위로 지나가는 밀양 주민들은 건강과 재산권의 보장을 요구하며 공사 반대 시위를 했다. 대부분이 일흔이 넘은 노인들이었다. 그러나 한전측은 공사를 강행했고 결국 노인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치우 할아버지는 이장을 15년 넘게 하면서 삼 형제와 함께 노모를 모시고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송전탑이 동생 이상우 할아버지 논 한가운데 들어서면서 시가 4억 5천만 원 하는 1,800평 중에 철탑 부지 150평과 전선이 지나가는 자리 400평만 감정가로 계산해 7,200만 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또다른 동생 이장우 할아버지 논 600평은 시가 1억 5천만 원인데 보상금이 1,500만 원이다. 그 옆에 있는 이치우 할아버지 논 370평은 시가가 9천만 원인데 송전탑과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보상금이 없다. 송전탑과는 80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철탑이 들어서면 팔리지도 않을 땅이 된다.
마을이나 논밭 위로 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면 사람이 살기도, 농사를 짓기도 어려워진다. 또, 누가 고압선 부근의 땅을 사려고 하겠는가. 일흔 넘은 노인들이 전 재산을 고스란히 빼앗길 형편에 빠졌다. 보상이라고는 송전탑이 세워지는 곳과 송전선 아래 면적만 해당된다.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논에 중장비가 들어오고 공사가 시작되자 결국 할아버지는 마을회관 앞에서 몸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불을 붙였다. 주민이 달려들어 불을 끄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기 위해 전국을 가로지르며 초고압 송전선이 세워진다. 차라리 수도권에다 원전을 세운다면 송전선 문제는 적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 에너지의 40%를 수도권에서 사용하는데 수도권에는 발전소가 없다. 그런데 원전은 남쪽에다 만들고 반대쪽에 있는 수도권까지 철탑을 세우고 송전선로를 깐다. 이때 생기는 환경 파괴와 주민들의 재산피해는 엄청나다. 갈등으로 말미암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건강상 문제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밀양시 단장면에 사시는 75세 된 어느 분은 30년 전 경사가 심해 버려진 땅을 샀다. 부부는 잡목을 베고 돌을 골라내서 밤나무 묘목을 심었다. 밤을 팔아 나오는 수입이 1년에 700만 원 정도, 다른 수입 없이 그걸로 먹고사는데 주변에 97번 철탑이 세워질 예정이고 이 부부에게는 보상금 154만 원이 나왔다. 손톱이 뭉그러지게 가꾼 땅인데 한전은 겨우 154만 원을 주고 몹쓸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땅을 팔기도 어렵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 해도 담보로 써주지도 않는다.
어느 분이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산속의 조용한 곳을 찾아 터를 구하고 집을 지었다. 주변을 아름답게 꾸미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옆으로 송전선이 지나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거리가 좀 떨어졌다는 이유로 아무 보상도 없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가까운 곳에 765kV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는데 전자기파 불안감으로 어찌 안심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냥 빈손으로 쫓겨나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송전탑이 지나는 곳에는 이런 억울한 사연이 한둘이 아니다. 국가는 '국책사업'과 '법'만 내세우며 나 몰라라 한다.
국가에서는 법대로 한다고 하지만 이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 한마디로 국가 폭력이다.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던 시골 마을이 송전탑이 들어서면 쑥대밭이 되어 버린다. 이러니 어느 누가 반대를 하지 않겠는가. 이치우 할아버지는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결국 목숨을 내놓았다.
정부는 핵발전소를 수도권에서 먼 바닷가에 건설한다. 그러면 앞으로도 국토를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선은 계속 필요하게 된다.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을 위해 환경과 시골 마을에 끼치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가는 핵발전소 폐기를 비롯한 이런 대규모 에너지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돈이 더 들더라도 송전선로를 지하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아니면 주민 불만이 없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던지.
며칠 전에야 이치우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전측에서는 앞으로 90일 동안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과 다시 협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쉬울 것 같지 않다. 지금처럼 전기 수요가 계속 늘고, 또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 발전 위주로 간다면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고 계속될 것이다.
얼마 전에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를 방문하고 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도 산골에 3년 전에 지어진 집인데 기름을 거의 쓰지 않고 다른 난방 수단도 별로 없는데 한겨울에도 실내는 24도 정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벽난로를 한 번 때면 24시간 따뜻하다고 한다. 전기는 TV나 냉장고를 가동하는데만 소량 사용한다. 이는 보온과 단열에 중점을 두고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주인 말로는 이렇게 지어도 일반 전원주택 건축비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런 사례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에너지 자립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에너지 자립이 되는 민주적인 소규모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삶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 파괴적인 산업문명과 국가주의와 결별하게 된다면 핵발전소도 필요 없고 기존의 송전탑도 모두 뽑아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 시대에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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