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슬플 때는 난 시골길을 걸어요

샌. 2009. 6. 24. 13:57



“슬플 때는 난 시골길을 걸어요.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껴안죠.” 영화 ‘세라핀’에 나오는 대사 중에서 유난히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세라핀’은 실존했던 비운의 화가 세라핀 루이(Seraphine Louis, 1864-1942)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수도원에서 생활하던 중 그림을 그리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수도원을 나온다. 그리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정규 교육이나 그림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그녀의 내부에서는 마치 하늘의 명령처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분출되어 나온다.


그녀의 그림 소재는 꽃과 나무다. 가난한 그녀는 흙이나 천연염료로 물감을 만들어서 그림을 그린다. 심지어는 교회의 성모마리아상 앞의 촛농을 훔치기도 하고, 동물의 피를 구해서 자신이 원하는 색감을 만든다. 세라핀의 그림은 그녀가 자신의 방식으로 신에게 드리는 찬미다. 그냥 숨겨져 있던 세라핀의 그림은 그녀의 천재성을 알아본 ‘우데’라는 미술 평론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그러나 별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그녀의 삶이 크게 나아지지도 않았다. 결국 그녀의 광기(?)는 더해지고 종내는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친다. 세라핀은 시대와는 어긋난 열정의 예술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모든 예술가는 좋게는 ‘끼’라고 부르는 일종의 광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주류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천재이고, 인정받지 못하면 광인이 되는 것이다. 세라핀은 작품을 떠나 신분상에서 이미 주류 미술계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아웃사이더로서의 천재였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의 전원 풍경과 나무, 그리고 홀로 자연을 찾아 나서서 그곳에서 위안을 받는 세라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는 멋진 나무들도 여러 그루 나온다. 세라핀은 지친 세상을 떠나 풀과 바람과 나무로부터 위로를 받고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특히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을 때 뜰의 나무 아래로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밖의 경치를 보는 순간 마치 자석에 끌리듯 걸음을 옮긴다. 경사진 풀밭의 한쪽에는 아담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세라핀은 아마도 그 나무 아래서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영혼의 안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녀의 그림들은 너무나 강렬하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에서도 세라핀이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여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며 경탄한다. 그러나 미술계 주류로부터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또한 세라핀의 삶은 그림의 화려함과는 정반대였다. 그림은 현실을 초월하고픈 세라핀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화려한 색감의 그림이 도리어 진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외롭고 고독했던 한 예술가의 불타는 영혼은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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