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미엘의 일기

샌. 2009. 6. 23. 09:35

고독한 철학자 아미엘이 40여 년 동안 쓴 일기는 세계와 인생에 대한 한 개인의 명상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독신으로 살면서세속적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영혼의 평화를 얻고자 했다. 맑은 영혼을 가진 그의 일생은 소박했고 청빈했다. 반면에 어쩔 수 없이 외롭고 우울한 측면도 있었는데 그것은 일기의 기본 색조로 나타나서 일기를 읽는 내내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미엘에게 있어 일기는스스로 말한 대로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라고도 했다. 그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성찰하고 고뇌하는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밑줄을 치며 읽었던 '아미엘의 일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아래에 옮겼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웠다. 왠지 일본어로 중역된 느낌이 자꾸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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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체념하는 것을 배우는 수업과 같다. 우리의 주장이나 우리의 희망, 우리의 힘과 자유를 줄이기 위한 수업이다.


- 태어나서 발버둥치다 사라져버리는 것, 이것이 인간이 겪어야 할 한순간의 드라마다. 우리에 대한 기억은 물 위를 떠다니는 파도와 같이, 또한 공기중의 미풍과 같이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우리 안에 불멸한 그 무엇도 없다면 인생이 겪는 회한이란 참으로 보잘것없는 고통에 불과하다.


- 수명에 관계없이 일생은 그저 한 줄기 연기임을 기억한다. 허공을 맴도는 나비의 그림자, 모래 위에 그려진 애꿎은 마음. 존재란 강물을 거스를 수 없는 물방울과 같다.


- 우리는 별똥별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사람들의 추억 속에 우리의 자취를 남길 수 있다는 데서 삶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질 이 땅에 우리의 헛된 노력을 남길 수 있다는 데 존재의 슬픔이 있다.


- 환상을 품지 않고 희망 없이도 인생을 견뎌내는 일, 삶이라는 이 영원한 싸움을 받아들이는 일, 이 한심한 사회에 혐오가 밀려오더라도 결코 세상에서 탈출하지 않는 일, 분뇨 투성이의 침대에서 꿈을 꾸는 일,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 인생은 희망이 아니라 임무다.


- 자신의 허무를 깨닫는 것은 지혜다. 그러나 그것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더 한층 높은 깨달음이다.


- 진정한 인간일수록 인간에게서 고립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평화를 사랑할수록 인간은 고독해진다.


- 교양을 수반한 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수많은 반성의 터널을 지나온 정신, 그리고 사물의 본성을 꿰뚫을 수 있는 정신이다.


- 우리는 아직 단순한 인간 후보자일 뿐 진정한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간이란 자기완성을 지향하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간일 것이다.


- 고된 인생에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만족하자. 그 바람을 타고 내 마음에 뿌려진 한 톨의 씨앗을 사랑하자. 다만 얼마라도 좋으니 그 강박한 내면에 약간의 터전을 남겨두자. 천상을 날아다니는 저 곤한 새들을 위해 네 영혼은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발견하도록 하자.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너를 만드신 하느님을 위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소박한 제단을 쌓자. 그리고 너 자신을 그들을 위한 제물로 아낌없이 내어주자.


- 그대여, 인생에 충실하라. 오늘은 내일의 백 년과 바꿀 수 없는 단 하루다.


- 신의 나라는 지식이 풍부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가장 착한 사람들의 것이어야 한다.


-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는 자가 있을 때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에게 선행을 베풀어 보이는 것이다. 관대해짐으로써 비로소 상처 받은 자리에서 독화살을 뽑아낼 수 있다.


- 여성들과의 플라토닉하고 깨끗한 우정은 많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관계가 오히려 두 사람에겐 슬픔의 원인이 되곤 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 정신은 결혼의 불가능을 주장하고, 육신은 결혼의 욕망 앞에서 괴로워한다.


- 일기는 고독한 인간의 위안이자 치유자다. 날마다 기록되는 이 독백은 일종의 기도하고 할 수 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펜을 든 명상이다.


- 풀잎마다 맺혀진 이야기가 있고, 난봉꾼의 마음 한구석에도 쓰린 소설이 있으며, 활짝 웃는 갓난아기의 미소에도 남은 생애에 대한 불안이 깃들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희극과 비극이 공존한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깨닫고 있다. 이것이 삶의 비애다.


- 생명이란 하루아침에 시들어버리는 풀꽃과 같다. 작은 한숨에도 꺼져버리는 촛불과 같다.


- 모든 사물의 근원에는 슬픔이 있다. 모든 강 끝에는 대해가 있듯이. 이 세상에 영속은 없다. 우리가 사랑한 것, 사랑하고 있는 것, 또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모든 것들은 언젠가 사멸하고야 만다. 생의 비밀은 죽음뿐이다.


-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영원한 테마의 변주곡이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느끼고, 바라보고,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울며 죽는다. 제아무리 몸부림칠지라도 운명은 물결칠 뿐 그 거대한 흐름은 막을 길이 없다.


- 자기 자신을 위해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작은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그 차이는 아무 것도 없다. 우주 전체를 통한 우리의 지각은 말할 수 없이 사소한 것에 불과하며, 삶이 내뿜는 한탄과 욕망은 가소로울 뿐이다.


- 인류는 지구라는 유성에 할당된 시간 속을 관통하는 번개다.


-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탄식을 억제치 말라. 애써 흐르는 눈물을 삼키지 말라.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위대함과 잊혀진 보석과 또는 망령의 강에 빠뜨린 구원에 대한 예고다. 인간에게 고통은 반드시 필요하다.


- 모든 것을 알려 하지 말라. 모든 것에 욕구를 갖지 말라. 모든 것을 포용하겠다는 자만을 버려라. 너는 단념해야 한다. 어딘가에 틀어박히고, 약간의 소유물로 만족하고, 잠깐의 일을 즐기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육신의 집착을 버리고, 너만의 개성을 사랑하도록 하라.


-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너의 마음에 드는 것을 가장 아름답게 생각하라.(루케르트)


- 생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신에 대해서 절망하라. 이것이 지혜이니라.


- 행복은 이 타락한 세계에서 추악한 이기심을 제거하고, 인간의 순수함이 아름답게 꽃피워진 화단이다. 그 어떤 고귀한 아침 햇살일지라도 인간의 영혼에 피어오른 행복감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 사랑은 환상이다. 어쩌면 사랑의 감정은 실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 대한 허구일 수도 있다.


- 여자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는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생활의 보편성을 찾는 것이 신앙이다. 주관적 객체가 객관적 실체로 전환되는 것이 진보다.


- 시인은 모든 것을 놀라워하고, 성인은 모든 것을 신성하게 바라본다. 영웅에겐 모든 것이 위대하고, 천한 자는 모든 것이 빈약하고 왜소하며 천박하게만 보인다. 악인은 자신의 마음에 악마를, 예술가는 올림포스를, 신의 선택을 받은 자는 천국을 만들어내지만 타인은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


- 우리는 모두 각자의 환영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선은 사물 속에 잠재해 있는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변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진정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방문을 열 것이 아니라 먼저 내 마음의 문부터 열어야 한다.


- 우리의 일생은 대롱에 매달린 비눗방울과 같다. 가끔은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창공을 떠돌기도 하고, 햇빛에 반사되는 빛으로 찬란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더러운 액체로 소멸한다. 모든 시인이 인간의 이러한 운명을 노래했다. 이것은 분명 진리다.


- 사회가 진보할수록 엄숙한 것, 신적인 것, 내적인 것은 더욱더 필요하다. 아무리 최신식 원양어선을 탄 선원일지라도 그의 육신에 체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배가 적도에서 북극까지 항해한다 하더라도 그는 죽은 목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은신처를 갖지 못한다면 그는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 그리스도의 삶은 신성한 전형이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했다. 신의 섭리를 증거함으로써 그가 신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비록 내가 교회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리스도 앞에서만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무지한 목사를 비하하고 그의 교리문답을 우습게 여길지언정 그리스도의 삶만큼은 경외한다. 기독교가 멸망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삶은 영원할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 진정한 진리란 바로 인간의 착각이다. 인간은 기만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희망만이 남았다고 착각한 판도라의 상자에는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노인들은 이 삶의 진실을 죽기 직전 깨닫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희망을 품는다.


-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나는 행복의 진정한 실례를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다.


- 철학이란 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말한다.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편견에서의 독립을 말한다. 철학자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을 때 홀로 깨어나 있는 사람이다.


- 일반인들은 어떤 일에도 의심을 갖지 않고, 어떤 일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자의 눈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모든 것을 의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과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이다.


- 악이란 자아의 승리다. 즉 자신의 허영과 오만과 육욕을 위해 그의 하나뿐인 생명까지 제단에 쌓는 자다. 이와 반대로 선이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수락하고, 그에 만족하고, 신을 체념하고, 신이 거둬들인 우리의 생명에 복종하는 것이다.


- 우리는 완성된 존재로부터 퇴화를 시작하는 유일한 종족일 것이다. 인간의 퇴화는 인간의 정신 때문이다. 인간은 살육을 규정하고, 정복을 정당화하며, 욕망을 도덕으로 둔갑시킨 유일한 변이이다.


- 앞으로 교육은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연연하게 될 것이다. 개인의 자성보다 무리의 안위를 더 높은 가치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질서는 통치의 수단이 될 것이며, 조직은 강탈의 수단이 될 것이다. 과학은 인간의 이해와 언어를 대신하게 될 것이고, 종교는 죽음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이다.


- 영원한 질서에 대한 감격이야말로 지혜의 근본이다.


- 나는 민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 쪽에게도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다. 다만 나는 한 개인으로서 완성된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인류의 진정한 힘은 민족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 애국주의는 착각이다. 애국주의는 집단의 결함과 폐해를 가리기 위한 선입견에 불과하다.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가족은, 다시 말하면 하나의 커다란 자아다. 나는 이 특수한 자아 속에 유폐되고 싶지 않다. 그 주관적인 틀 속에서 생을 관통하는 질서를 잃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불변하는 객관의 정체다. 나의 유일한 쾌락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가는 우매와 편협, 과장에서 벗어난 내적인 자유다.


- 이 조잡한 실제주의는 시대의 추세가 아니라 퇴폐한 국민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단순한 민주주의 쇠락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존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정신과 이익, 권리를 지키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절박한 의무다. 인간의 일상이 사회에 묻혀버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살아 있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 가장 큰 결점은 인간의 선택으로 정치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투표라는 참여가 전제되어 있지만, 결국 의사결정은 소수의 인간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결정해버리는 것이다. 투표라는 수단이 민주주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 세계가 선한 손으로 만들어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직 의무가 우리를 속이지만 않는다면 행복을 주고 선을 베푸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율법이자 우리를 구원할 구조의 닻이다. 설사 모든 종교가 거짓이었다 해도 신념이 존속되는 한 우리는 여전히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살 만한 것이다.


- 욕망의 포기와 자비의 실천, 이것만이 영원한 해탈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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