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안토니아스 라인

샌. 2009. 5. 11. 10:38



좋은 영화를 한 편 보았다. 10여년 만에 재개봉한 '안토니아스 라인(Antonia's Line)'이다. 안토니아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연대기로 네델란드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이 영화는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여성성에 의한 자유와 해방의선언으로 읽혀졌다. 종교나 지성이나 가정의 틀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연의 싱싱한 생명력이다. 그런 점에서는 자연주의를 찬양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여성성과 자연주의는 상통하는 바가 많다.

 

자유와 해방을 상징하는 여러 장면들이 있다. 신부가 위선적인 강론을 할 때 당당히 퇴장하는 안토니아, 강의중인 교수를 향해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뛰쳐나가는 테레사의 행동 등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항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제복을 벗어던지고 "자유다!"를 외치는 보좌신부의 환희로 극명하게 나타난다. 안토니아의 삶 자체가 그런 거부와 용기의 일생이었다. 그럼으로써 안토니아와 주변 사람들은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

 

안토니아가 어린 딸과 함께 돌아온 고향은 중세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보수적 마을이었다. 그런 지배적 가치관에 안토니아는 당당하게 맞서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다. 약자에 대한 보살핌과 관용의 정신으로 안토니아는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안는다. 부드러운 여성성이 가부장적 권위나 고리타분한 지성을 극복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토니아의 마을을 이상적 공동체의 전범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인위적 체제나 규율이 없지만 선한 인간성과그 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마을은 어떤 점에서 문명 이전의 이상적인 모계 중심의 원시 공동체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는 하늘보다는 땅, 정신보다는 몸을 강조한다. 아가페보다는 에로스적 사랑이 삶에 생기를 준다. 마을 사람들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것을 교대로 보여주는 장면은 재미있다. 어린 테레사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투정 부리는 모습은 웃음을 주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형태도 여러 가지다. 다니엘이 아빠 없는 아이를 원할 때 안토니아는 기꺼이 하룻밤의 짝을 찾으러 딸과 함께 도시로 간다. 기존의 가족 제도를 철칙으로 믿는 우리에게는 충격적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안토니아 외에도 마을의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평생 집에서만 지내는'굽은 손', 보름달만 뜨면 늑대처럼 우는 여인, 그 여인을 좋아하는 아래층 남자, 바보 부부의 사랑, 악한 피트, 자식을 열둘이나 둔 미혼모 등 각자의 인생의 눈물나게 그려진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느껴보라고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부러웠던 것은 안토니아의 임종 장면이었다. 가족과 이웃에게 둘러싸여 조용히 숨을 거두는 모습은 험하게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저렇게만 갈 수 있다면 죽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안토니아의 삶과 생각이 가져다 준 보상인지도 모른다. 또한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들이 좋았다. 주인공 안토니아를 비롯해 하나 같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의 모습이었다. 인형 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아니어서 도리어 감동이 더했다.

 

이웃에 사는 홀아비 바스가 안토니아에게 청혼을 한다. 자신에게 아내가 필요하고, 아들들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안토니아는 이렇게 말한다. "난 아들 따위는 필요 없어요. 남편? 남편이 왜 필요하죠? 가끔 여자가 못하는 일을 도와 주세요. 신선한 달걀과 우유나 빵을 드리죠." 안토니아 혼자 너른 들판에서 씩씩하게 씨를 뿌리는 모습과 함께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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