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때 이랬다면

샌. 2009. 4. 3. 10:14

 

 

세상사는 뒤엉킨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 사건이 일어나는데는 온 우주가 관계한다. 그것을 어떤 사람은 우연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필연이라고 한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지구별에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게 된 것도 기적 같은 사건들이 겹쳐서였다. 그중 하나만 없었어도 우리 존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마치 벽돌 하나가 빠지면 전체 건물이 붕괴되는 경우와 같다. 우리는 인과의 그물망이라는 시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그런 장면이 있다. 한 남자가 늦잠을 잔다. 그가 급히 택시를 타는 바람에 한 여자가 택시를 놓치고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다음 택시를 탄다. 길을 가던 택시가 화물차에 막혀 신호를 기다리고, 이때 연습실에서 나온 데이시의 신발끈이 풀린다. 신발끈을 묶고 지체된 데이시와 코너를 돌던 택시가 기묘하게 한 시공간에서 만나고 사고가 난다. 그래서 유명한 발레리나였던 데이시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만약 그 중의 하나라도 다르게 진행되었다면 교통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시는 벤자민을 만나지 못하고 성공한 발레리나로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데이시에게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고가 아니어도 데이시는 벤자민을 만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운명론자라 할 수 있다. 현대과학은 결정론을 부정하고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 나온 것이내가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듯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지만 이미 정해진 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본지가 꽤 지났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잔잔하게 그려서 감명 깊었다. 주인공은 벤자민과 데이시였지만 그 외에도 벤자민을 기른퀴니, 번개 맞은 노인, 주정뱅이 선장 등 모두가 각자의 인생길을 애절하고 아름답게 걸어간 사람들이었다. 그 길에 우열은 없다. 서로가 다르다고 느끼지만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우리들이다. 다만 서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영화에는 이런 대사도 나온다.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잘 알고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수영을 잘 하고

누군가는 춤을 잘 추고

누군가는 어머니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강가에 앉는 것을 위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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