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생명의 본능

샌. 2009. 6. 29. 10:11

‘21세기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은 새로운 여성의 세기가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책 내용 중에 동물세계에서는 암컷의 바람기가 보편적인 현상임을 보여주는 예들이 나온다. 새들 새끼의 유전자를 검사했더니 반 이상이 자신의 짝이 아닌 다른 수컷과의 관계로 태어난 것이 밝혀졌다. 일부일처제를 지킨다고 알려진 원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현상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다양하고 질 좋은 유전자를 확보하는 것이 생명의 목적일진대 평생을 한 파트너와 관계한다는 것이 도리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훨씬 더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할 확률이 높다.


인간세상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자의 바람기가 쉽게 드러나는 것에 비해 여자의 바람기는 은폐되어 있고 또 은폐시키려 한다. 수컷의 입장에서는 다른 씨의 자식을 길러야 하는 것은 엄청난 손해이고 낭비다. 그러나 암컷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나 자신의 유전자가 자식에게는 절반 들어가 있다. 생물세계는 원천적으로 모계중심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동물세계에서 성 선택권이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생물학자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연계의 일반적인 원리는 수컷은 경쟁하고 암컷은 선택한다. 동물세계에서는 성은 평등하지 않다. 가장 힘세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 암컷과 교미할 권리를 가진다. 다른 수컷들은 눈치껏 도둑교미를 할 뿐이다. 이것 역시 한 종이 우수한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려는 진화적 생존 전략일 것이다.


이런 동물세계의 원리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만들어 놓고 어떤 나라에서는 이성에 대한 곁눈질을 법으로 규제하기까지 한다. 결혼이란 평생 한 사람과만 섹스를 하겠다는 약속이다. 일부일처제가 성적 질서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간세상에서 그나마 평등한 것이 성적 소유에 대한 권리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세상이나 동물세상이나 별 차이가 없다. 인간세상에서도 힘 있는 수컷들이 은밀하게 뒷구멍으로는 성적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모 신인배우의 자살과 그에 얽힌 사연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임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바람기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남자의 바람기는 암묵적으로 인정되면서 여자의 바람기는 그동안 무시되고 억압되었다. 그리고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체제가 낳은 제도라는 견해도 있다. 앞으로 여성의 권리가 확대되고 발언권이 높아질 때 결혼제도의 변화 또한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이 불가피하게 선택한 제도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엄청난 홍등가 산업과 그 밖의 은밀한 뒷거래들이 이를 증명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도 그런 파열음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영화 포스터의 부제목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있어?’였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10년에 한 번씩 결혼 계약을 갱신하게 된다면 어떨까? 세상은 엄청난 사랑의 낭비에 빠지고 혼란스러워질까?


바람기는 인간에게 굴레이면서 생명을 살아남게 하기 위한 힘이기도 하다.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연민어린 측면이 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위해서 영원히 헤매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데 어찌할까. 그러나 잘못하다가는 서로가 물불을 못 가리는 광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린 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의 환희와 기쁨이 된다. 하늘의 조화란 참으로 묘한 것이, 남과 여의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갈증의 깊이를 생각하면 한없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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