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화석정

샌. 2009. 2. 28. 19:32



어제는 파주에 간 길에 화석정에 들렀다. 화석정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임진강가에 있는 정자로, 율곡 이이(李珥)가 제자들과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원래는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정자를 세웠는데, 율곡의 증조부가 중수하고 '화석정(花石亭)'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임진강이 휘돌아가는 강변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일품이었다. 이 정도면 절로 시가 나올 법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바로 앞으로 4차선 도로가 지나가서 화석정에 서면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귀에 거슬렸다.

 

화석정 한 켠에는 율곡이 여덟 살 때 지었다는 시 한 수가 돌에 새겨져 있다.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울고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아무리 천재였다지만 여덟 살 소년의 시라고 하기에는 잘 가늠되지 않는다. 마치 어린 소년이 수염을 쓰다듬는 것처럼 어색하다. 하긴 왕필은 15세인가에 노자 도덕경의 주석을 달았다니까 천재의 비상함을 범인이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석정 둘레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들도 보기에 참 좋았다. 그리고 화석정과 자운서원을 거쳐 파주와 포천 지역에 있는 몇몇 나무들을 찾아보았다. 경기 북부 쪽은 올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며 지나는 길에 있는 나무들을 만났다.

 

그리고 30여 년 전에 근무했던 동두천의 군부대가 마침 지나는 길에 있었다. 그때와는 주변이 너무나 많이 변해서 낯선 곳에 온 것 마냥 생소하기만 했다. 정문만 어슴프레 기억날 뿐옛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는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30 년이면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세월이니 기억 속의 봉암리를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을 것이다. 이런 때면 세월이 많이 흘러갔음을 실감한다. 마음만 예전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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