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끊임없이 오지도 않는 사람을 찾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쇠락해 가는 것이 어디 고향집 뿐이랴. 내 마음 속 풍경은 한없이 황량하고 쓸쓸하다. 내 혼자도 감당하기 힘든데 고향에 오면 짐이 몇 갑절이나 무겁다. 그러나 어찌 하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을, 세상사가 그러한 것을...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빈 말이 아닐 것이다. 미래에는 뭔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에 속고 사는 게 인생인지 모른다. 힘든 현실을 감내하는 힘도 거기에서 나오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무게는 점점 더 버거워지고 숨가쁘다.삶의 쓸쓸함 앞에서스산해지는 가을이다.
저녁에 길을 나섰다. 철 없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 뛰어다녔던 그 길이다. 차례를 지내면서 킥킥거리고, 밤 한 톨에도 행복해 했던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머리는 온갖 계산과 애해득실에 가득차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알아보지를 못한다.
가을 들판은 예대로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자연의 풍경은 변한 것이 거의 없다.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작은 마음자리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미물에게 자연은 위대하고도 높다. 늘 변하면서도 한결 같음, 늘 같으면서도 새로워지는 자연은 그 자체로 큰 위로다.
새로 난 농로의 시멘트길에 새 발작국이 선명하다. 아마 시멘트가 굳어지기 전에 새 한 마리가 지나갔나 보다. 지워질 수 없는 자국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의 궤적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자꾸 험해지는 것은 사람들이자신들 삶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착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이 우주정신의 홀로그램에 저장되고 있다면 어떨까. 저 새 발자국처럼 말이다. 그러면 난 조금은 더 조심스러워질까?
해가 진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울 때가 이 순간이다. 지는 태양은 평범한 풀도 금빛으로 빛나게 한다. 하늘도 이 시간에는 가장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의 뒤에는 생존의 냉혹함이 있다.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풀은 수많은 시련을 견뎌내야 했다. 무심히 보이는 저 하늘 상공에는 거센 바림이 불고 무자비한 방사선이 내리쬐인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채기를 안고 산다. 한 상채기가 다른 상채기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배려다. 따스한 위로가 우리들을 적셔주기를, 그래서 이웃과 함께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면산을 넘어 동작에서 일원까지 걷다 (0) | 2008.09.29 |
---|---|
아내가 수술을 받다 (1) | 2008.09.26 |
종묘 (0) | 2008.08.31 |
사당에서 방화까지 걷다 (0) | 2008.08.25 |
첫째와 함께 한 여행 (3) | 2008.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