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24]

샌. 2008. 6. 8. 17:09

백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

손이 닿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밟고

무릎이 닿는 대로 삭삭 울리고

칼이 나가는 대로 쉭쉭 소리를 내는데

음악에 맞지 않음이 없어

'상림(桑林)'의 춤과

'경수(經首)'의 잔치에 알맞은 것 같았다.

문혜군은 감탄했다. "하!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쩌면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백정은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얻은 결과는 도(道)이며

기술보다는 우월한 경지입니다.

처음 소를 해체할 때는

보이는 것이 모두 소뿐이었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이제 소 전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저는 소를 정신으로 대했을 뿐

눈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감관의 지각이 멈추면 정신이 움직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의지하여 큰 틈새로 들이밀고

큰 구멍을 통행하여 본래의 자연을 따릅니다.

기술자는 힘줄을 다치지 않고

더구나 뼈에 닿지 않습니다.

우수한 백정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힘줄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다치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소를 수천 마리 잡았으나

칼날은 숫돌에서 새로 나온 것과 같습니다.

마디는 틈이 있으나

제 칼날은 두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로 넣으니 텅 빈 듯 넓어서

칼질이 춤을 추듯

반드시 여유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십구 년이 지났으되

칼이 방금 숫돌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백정들이

어렵게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안타깝게 여겨 타이르기도 하는데,

보는 것을 그치고

행동을 서서히 하게 하면

움직이는 칼이 심히 미묘해져

재빠르게 소를 해체해 버립니다."

그는 흙이 땅에 맡기듯 칼을 들고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만족한 마음으로 칼을 씻어 칼집에 넣었다.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다!

나는 백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을 터득했도다."

 

- 養生主 2

 

이 부분은 장자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곳인데 내용이 길어서 원문을 같이 싣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이유는 비천해 보이는 우리네 삶도 예(藝)나 도(道)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서 감격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무나 이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지만 현실을 넘어선 초월의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된다.

 

백정은 중국에서도 천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장자는 삶의 요체를 깨달은 사람으로 백정을 내세운다. 그리고 임금이 백정에게서 참살이에 대해 배운다. 이것은 장자가 아니면 묘사할 수 없는 파격이고 신선함이다. 물론 백정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문혜군의 태도 또한 존경받아 마땅하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그런 열린 마음과 큰 눈을 가져야 한다. 마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때여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백정은 자신의 일을 기술(技術)이 아니라 도(道)라고 했다. 소를 잡지만 소가 보이지 않는다. 백정은 3 년이 지나서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 사물의 겉모습에 일희일비하는 피상적인 삶에서, 사물을 정신으로 만나는 자유로운 삶으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나와 소가 구별되는 이분법적 세계에서 나와 소의 구별이 없는 주객 초월의 세계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색(色)에만 갇혀 있다가 공(空)을 깨달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삶이며, 장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무아(無我)와 망아(忘我)의 경지다.

 

백정 같이 산다면 고단한 삶도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 이만큼 살았어도 아직보이는 세계에만 매달려있는 나 같은 범부들에게장자는 충고한다. '보는 것을 그치고 행동을 서서히 하라'고, 그러면 칼의 움직임이 미묘해지고 재빠르게 소를 해체해 버릴 수 있다고. 지인(至人)은 '일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만족한 마음으로 칼을 칼집에 넣는다'는 표현도 멋있다. 이만한 인생의 여유와 조심스러움이 있어야 진정한 삶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조급하기만 하고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현 세태와 비교할 때 이런 고전적인 삶의 향기가 더욱 그립다. 그리고 비록 책으로나마 이런 삶의 스승을 옆에 모실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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