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그림자에게 물었다.
"금방 당신은 걷다가 지금은 그치고
금방 앉았다가 지금은 일어섰소.
어찌 그대는 자주(自主)하는 지조가 없는가요?"
그림자가 답했다.
"나는 나와 흡사한 모상이 있어서 그럴까요?
또 나를 닮은 모상도 그의 모상 때문에 그럴까요?
나는 뱀 허물이나 매미 허물을 닮아서 그럴까요?
어찌 그렇게 되는 까닭을 알겠으며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까요?"
罔兩問景
囊子行今子止
囊子坐今子起
何其無特操與
景曰
吾有待而然者邪
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吾待蛇부조翼邪
惡識所以然
惡識所以不然
- 齊物論 14
과학 용어로는 '罔兩'은 반 그림자, '景'은 본 그림자를 뜻한다.반 그림자는 광원이 점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가 있을 때 본 그림자 둘레에 생긴다. 그러니 반 그림자는 본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반 그림자는 본 그림자에 의존하고, 본 그림자는 물체에 의존한다. 물체 또한 그 물체의 원래 모상에 의존한다. 그렇게 나아가면 궁극의 존재에 도달할지 모른다. 그게 결국 도(道), 하느님, 자연의 원리라 부를 수 있는 궁극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장자는 이런 궁극의 존재를 인간의 지력으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이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이다. 다만, 우리가 그림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궁극의 존재를 모르더라도 그 원리에 어긋나게 살지는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궁극의 원리를 끝없이 파헤쳐간 서양이 인간의 오만함을 부추기며 도리어 자연 원리에 반하는 문명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장자가 볼 때 그것은 설익은 지식이고 해로운 지식이다. 마치 남을 무시하고 비웃기까지 하는 자기 중심의 반 그림자[罔兩]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