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20]

샌. 2008. 5. 12. 06:33

자연의 분계에 화합하고

혼돈의 무극에 따르는 것이

생을 다하는 방법일 것이오.

무엇을 자연의 분계에 화합한다고 말하는 것이오?

시(是)는 시가 아니요,

연(然)은 연이 아니라고 말하겠소.

시가 과연 시라면

시는 불시(不是)와 다를 것이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할 수 없소.

연이 과연 연이러면

연은 불연(不然)과 다를 것이오.

그러나 그것을 분별할 수 없소.

세월을 잊고 의리를 잊고

경계가 없는 대로 나아가시오!

그래서 경계가 없는 경지에 머무르시오!

 

和之以天倪

因之以曼衍

所以窮年也

何謂和之以天倪

曰 是不是

然不然

是若果是也

則是之異乎不是也

亦無辯

然若果然也

則然之異乎不然也

亦無辯

忘年忘義

振於無竟

故寓諸無竟

 

- 齊物論 13

 

시(是)와 비(非)의 세계 속에서 시와 비를 초월하며 살기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장자는 인간의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믿지 않는다. 누가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절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아무 주관도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장자는 '자연의 분계와 혼돈의 무극에 따르라'고 충고한다. 역시 어려운 말이다. 여기서 천예(天倪)를 '자연의 분계'로 번역했는데 글자 그대로 '하늘로부터 받은 동심'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천예는세상에 물들지 않은 하늘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동자 같은 마음이다. 그 마음에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갈라놓은 경계나 분별심이 없다. 장자가 그리는 것은 그런 어린아이 마음의 회복이다. 이미 세상물에 찌들대로 찌든 나 같은 사람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으니 낙담할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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