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허약한 체질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나마 건강이 유지되는 것은 평소 생활에서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음을 하게 되면 반드시 며칠 동안은 푹 쉰다. '골골 팔십'이라는 옛말이 있듯 몸이 약한 사람은 무리를 할래야 할 수가 없으므로 도리어 건강한 사람보다 장수하게 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냉정하다고 말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을 생각한다기보다는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들면 주량도 줄어드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겠다. 전날 고량주 두 병과 맥주 한 병을 마신 것에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만취가 되었다. 덕분에 연휴 이틀을 집에서 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밝은 봄햇살의 유혹 또한 견디기 어려웠다. 몸은 누워있어라하고 마음은 밖으로 나가라는데, 오후들어 날씨는 흐려졌지만 뒷산으로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몸과 마음 어느 쪽도 서운하지 않을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3 월 하순으로 접어들지만 이른 봄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꽃들은 아직 땅 속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이다. 이런 때에 만나는 꽃들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한 편으로는안스럽기도 하다. 변덕쟁이 봄날씨에 잘못 눈이라도내리면여린 꽃잎이 얼마나 추울까하는 염려가 된다. 그때는 꽃들도 너무 일찍 나온 것을 후회할지 모른다. "너무 부지런해도 탈이야, 따스한 땅이불 속에서더 단잠을 잤으면"하고....
풀꽃을 보기 위해 발밑만 보고 걸었다. 제비꽃, 별꽃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산책로 화단에 심어놓은 돌단풍도 벌써 꽃잎을 열었다. 나무꽃 중에서는 제일 빠른 것이 산수유다. 지난 주에 노란 꽃망울이 맺히더니 일주일 뒤에 보니 만개를 했다. 그밖에 진달래, 개나리, 목련, 회양목도 매무새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향연의 서곡이 이제 시작되었다.아름다운 생명의 합창 소리가 온 대지를 울리기 시작한다. 올 봄은 처음인 듯, 마지막인 듯, 새롭게 그리고 감사하며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