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산머루 / 고형렬

샌. 2006. 2. 16. 14:19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펑펑 쏟아지는 눈처럼

서울 어느 밤의 특설령처럼

못 견디게 그리운 사랑이 되었으면

그러나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 산머루 / 고형렬

 

멀리 떨어져야 사람이 그리워질까? 사람이 그립기 보다는 싫고 밉고, 그래서 만나지 않았으면 싶을 때가 많다. 서울이라는 장소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서울에 가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이젠 이놈의 장소도 싫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그러나 이런 애증이라는물건은 다 무엇인가?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은 무엇이고, 보기 싫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한때는 그것들이 반대의 의미로 나를 아프게 했었다. 곧 우린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산골 어디쯤 숨어들어가 그리움도 미움도 잊은 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