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외할머니

샌. 2005. 7. 17. 07:22

나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학교가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읍내에 방을 얻어 외할머니가 내 뒷바라지를 해 주신 것이다. 그 뒤로 동생들도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우리 집 다섯 남매는 모두 외할머니의 손에 의해 성장하였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낸 셈이 된다. 당시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된 것에 불평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가 고생을 무척 많이 하신 것 같다. 사춘기를 겪는 반항기의 외손주들을 하나같이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당시에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이런 것들이다. "00 니는 인정머리가 하나도 없다." "외손주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데 내가 왜 이리 헛고생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부정적인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외할머니는 자주 이렇게 푸념을 하셨다. 그때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지 서운했는데 지금 가만히 돌아보면 외할머니의 그런 말씀은 정확한 것이었다. 내 자신이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커가면서 저절로 드러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고 이기적인 성향이 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예언대로 당신은 지금 막상 옆의 손길이 필요할 때 키워준 손주들의 도움도 받지 못하신다.

 

외할머니는 지금 고향에서 어머님과 같이 살고 계신다. 백수(百壽)를 바라보실 정도로 장수하시는데 몇 해 전부터는 치매로 정신을 놓으셨다. 지금은 딸이나 손주도 구별을 못 하신다. 다행히 몸은 정정하셔서 거동에는 불편이 없는데 너무 자주 돌아다니셔서 탈이다. 한 순간만 딸이 눈에 안 보이면 온 동네와 산으로 찾아 다니신다.

 

이미 칠순을 넘긴 어머님이 감당하시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늘상 옆에 붙어 있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짜증과 한탄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어쩌다 집에 내려가면 늘 내 마음은 착잡해 진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힘이 되어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고향집에 내려가 사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머님이 생각을 바꾸고 집에서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인데 그것 또한 어머님의 성격상 기대하기 난망한 일이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내가 어머님의 역할을 맡는다면 그 이상으로 더 잘 할 자신도 없다.

 


 

마루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이 오늘따라 측은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안 된다고 양심이 속삭이지만 사실 외할머니가 미울 때가 많다. 어떨 때는 이젠 그만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직은 초기 단계일지 모른다. 외할머니가 거동을 못 하시고 대소변도 못 가리게 된다면 그때는 일이 보통이 아닐 것 같다. 앞으로 어머님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뭐니뭐니해도 복 중의 복은 인생의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신을 놓으신 외할머니를 바라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간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니 어떻게 하랴? 신의 선택만 기다려야 할까?

 

그래도 평소에 아름다운 생각, 아름다운 행동으로 세상을 산다면 말년에 그런 행운이 찾아올 기회가 많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해 본다. 또 하나, 살면서 무엇에든 집착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거기에 매이고 집착하는 마음은 스스로 자신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다.

 

외할머니가 이젠 더 이상 누추해지지 않고 생을 마칠 수 있게 되기를 빌 뿐이다. 불쌍한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괜스레 자책감이 들어서 마음이 괴롭다. 그래서 고향집에서 돌아온 날이면 못된 일을 하고 난 죄인의 심정이 되어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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