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목탁 치는 소

샌. 2005. 7. 5. 13:24

강화도로 드라이브를 나가다. 장마가계속되니 날씨 따라 기분이 가라앉고 침울해진다. 동료들과 안면도에 가려고 했으나 한 사람의 사정으로 팀이 깨지는 바람에 혼자 길을 나선 것이다.

 

나에게 강화도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다. 20여 년 전에는 직장의 동문들과 자주 강화도에 놀러 갔다. 그때는 신촌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화읍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외포리에 가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가는 것이 기본 코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불편했을 것 같건만 당시는 그런 생각 없이1년에 두세 차례씩 재미있게 다녔다. 지금은 다들 흰 머리 희끗해지는 나이가 되었을 그때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산천도 많이 변했다. 서울-강화도 40여 km의 길이 이젠 4차로 이상으로 넓혀졌고, 길 양쪽은 공터 하나 없이 집들로 가득해 졌다. 예전에는 서울만 벗어나면 논과 밭이 있는 전원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아파트와 건물에 가려져 산 조차도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건 강화도도 마찬가지다. 경치 좋은 곳이면 으례히 카페, 모텔, 펜션 등의 간판을 단 상업성 건물이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나 문명의 손길을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수록 더욱 끈질지게 유혹하고 달라 붙는다. 이젠 한적한 장소는 보물찾기보다 더 어려워졌다.

 

동편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가 선원사(仙源寺)에 들러본다.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을 각판한 아주 큰 절이었다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현재 동국대에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절집도 새로 짓기 시작하고 있어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어수선하다.

 

그런데 선원사에서 우연히 목탁 치는 소를 만났다. 몇 달 전 SBS TV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모셔져 있는 것이다.

 


 

이 소는 희한하게도 혀를 굴리면서 꼭 목탁 치는 소리를 낸다. 외양간에 들어가니 앞에 있는 소와 가운데 엎드려 있는 소 두 마리가 동시에 목탁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입은 약간 벌리고 혀를 굴리면서 소리를 내는데, 사람이 혀를 말아 입 천장에 대었다가 앞으로 차낼 때 내는것과 과정이 같아 보였다. 어찌 되었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절에서는 이 소에게 신우보살(申牛菩薩)이라는 법명까지 지어주며 출가수계증을 주었다. 계사(戒師)로 주지 스님이 발행한 수계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금생에 절로 출가한 인연으로 래생에는 꼭 성불하십시요'

 

생명들에게 전생(前生)이 있다면 저 소는 전생에서 고승(高僧)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못된 짓을 했길래 소로 태어나 전생의 흔적을 되새김하고 있는 것일까? CCTV로 감시하고 있으니 소에게 다른 음식물을 주지 말라는 주의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저 소는 신도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저 소는 그만큼 행복한 것일까? 신도들이 자기 앞에서 왜 저렇게 합장을 하는지 눈치를 채기나 하는 것일까? 차라리 아무 관심이 없더라도 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싶어 하지나 않을까?

 

잠시 전등사에 들린 뒤 동검리 해안가로 나가다. 저녁 노을을 보고 싶었으나 바다에는 해무가 자욱해서 시야가 좋지 않다. 장마철인데 지나친 욕심을 부렸나 보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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